방 정리가 이렇게 심적으로 힘든 일이 될 줄이야
올해 정말 찌는 듯하게 더웠던 여름에 나는 많이 아팠다. 병원 입원을 몇 번 했고 밤에 갑자기 응급실도 몇 번 가느라 나의 여름은 또 힘들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힘든 여름도 다 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쌀쌀해지고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병원에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느라 내 방 정리를 할 새가 없어서 내 방은 정말 가을이 온 지 꽤 며칠이 됐는데도 정리가 안 된 채로 남아있다. 요즘 며칠 전부터 방 정리를 시작했는데 정리를 하다 보니 예전에 회사 다녔을 때와 미국 유학생활을 했던 시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류와 사진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 흔적들을 보자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암 진단받기 전의, 내 전성기였던 그때의 기억들이 또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때에서야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방 정리를 계속 미루고 있었던 이유를. 이 흔적들을 보는 게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 거라는 걸 알아서 무의식적으로 방 정리를 미뤄왔던 것 같다. 마치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그 예전 기억들이 내 마음을 어지럽혀서 나는 결국 또 방 정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또 올해가 다 끝날 때까지 방 정리를 못 끝내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해를 맞으려면 힘들어도 방 정리를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환경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마음까지 어지러워지고 힘들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방 정리하면서 쏟아져 나오는, 내 인생에서 제일 전성기였던 그 시간들의 흔적 한 장 한 장을 발견할 때마다 오는 “현타”가 내 마음을 계속 후려쳐서 도저히 정리를 빨리 할 수가 없다. 방 정리를 하는 게 이렇게 심적으로 힘든 일이 될 줄은 예전에는 정말 몰랐다.
판도라가 열었던 상자 속에서 온갖 재앙과 재악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처럼, 상자 속에 남았다는 그 “희망”을, 내 마음속의 상자에도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