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 안 해도 괜찮은 하루

침대정리

by Rumina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정리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의 습관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무심코 보았던 어느 글에서도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무기력한 날 이렇게 생각했다.

‘이불을 정리한 것 만으로 하루에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오면 이 말을 기억하며 침대를 겨우 정리하곤 했다.

하루 일은 다 했으니 나머지 시간은 편하게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하지만 편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졌다.

‘무엇이라도 해야 사는 것’이라는 말이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왔다.

무언가를 하자니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해야 할 것엔 의욕이 나지 않았다.

이런 상태는 참 고통스럽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 지친 마음은 오히려 무엇도 할 수 없게 한다.

도대체 이런 요상한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네 존재는 가치가 없으니 자신을 증명하라!’

’존재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였을 것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대는 메시지에 자주 무기력에 빠졌다.

무기력과 무가치함은 늘 같이 올라왔고 그때마다 나는 있을 곳을 몰랐다.

그렇게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 보낸 시간들이 있다.


존재만으로 존재하는 당연한 일이 그토록 어렵다.

‘조건화’ 되었기 때문이다.

말 잘 들으면 인정해 줄게.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사랑할 거야.

동생을 잘 돌보는 아이가 착한 아이야.

네 생각을 고집하는 건 나쁜 거야.

...


누구도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환경과 상황 속에서 비 언어적으로 전달되었고 몸에 스며들었다.

사람은 수십 가지 조건들 속에서 아이 때나 성인이 된 후나 그저 편안하게 존재하는 법을 모른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라는 칼 로저스는 [인간 중심 상담]을 창시했다.

인간 중심 상담에서는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수용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인데 자라온 환경이나 사회로 인해 가치 조건화가 이루어지며 자기 생각과 감정을 믿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믿지 못하면 생각과 욕구, 행동이 통합되지 못한다.

분열된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인생은 행복에서 아득히 멀다.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서 아무 조건과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수용한다는 것은
조건, 행동, 감정과 상관없이 무조건적 가치의 사람으로서
따뜻하게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저스가 말한 수용의 정의이다.

이런 수용을 해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큰 복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부모도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무조건적 수용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침대 정리마저 멀리 던져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히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우리이다.

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새근새근 숨 쉬는 작은 아이의 고귀함과 우리의 숨결은 뭐가 다를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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