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I
가끔 오디오 북을 들으며 그림을 그린다.
유익한 내용을 들으며 원하는 것을 그릴 때 행복하다.
결과물을 쌓아가는 것도 좋다.
게다가 디자인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그린다는 것은 여러모로 내게 유익한 일이다.
주로 얼굴을 그린다. 사람의 표정에는 사계절이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아이의 얼굴에서는 막 시작된 봄이, 선한 얼굴에서는 맑은 햇살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주름 가득한 얼굴에서 한 여름의 푸른 잎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얼굴을 잘 그리면 다른 것들 그리기는 쉽다고 하는데 정말 표정을 제대로 그리는 것은 어렵다.
나를 제대로 담은 초상화가 그리고 싶어서 시작했다.
오랫동안 형체 없이 흩어져 있던 진짜 내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화실에 다니며 인물화를 시작했을 때 예상치 못했던 ‘나’를 만났다.
수정하는 것을 귀찮아했고 심지어 두려워했다.
그림은 지저분하게 그려야 한다는데 선하나 긋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림을 그리며 오래 묵은 마음을 발견했다.
실수나 잘못은 고칠 수 없는 불변의 것이라는 생각이 내게 있었다.
어린 시절 간간히 들었던 ‘어쩔 수 없이 산다.’는 엄마의 한탄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 한번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
실수는 실수로 끝나버리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믿음이 그림 하나도 자유롭게 그리지 못하게 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렇다.
자식 때문에 이렇게 살게 되었다는 엄마의 인생을 수정하려면 내가 없어야 했다.
나를 수정 불가의 오류 같은 존재로 여겼다.
무의식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생존을 위해 자신을 죽이기도 한다.
해리성인격장애(다중인격장애)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 공연들이 있다.
드라마 [킬미힐미]와 뮤지컬 [인터뷰], 영화 [23 아이덴티티]를 공감하며 보았다.
감당할 수 없는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느라 진짜 자기를 덮고 거짓 인격체를 만든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건 인간의 정신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인격체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믿음은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이다.
비합리적 신념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것이 ‘날씬해야 해, 예뻐야 해!’인 것 같다.
그리고 ‘넌 나에게 친절해야 해’, ‘내가 무조건 옳아’, ’다른 건 나쁜 거야’ 등등이 있다.
각 사람의 입장과 생각의 차이는 믿음 체계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그림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수정을 하면 수정이 된다는 사실을 그림을 그리며 배웠다.
틀어진 형태를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다시 선을 채워 넣으면서 ‘수정을 하니 수정이 되네!’ 했었다.
그제야 발견한 단순한 사실 앞에서 실소가 터졌다.
뇌는 가소성을 가진다.
가소성은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아 모양이 변한 뒤 그 힘이 사라져도 모양을 유지하는 성질을 말한다.
찰흙처럼 힘을 가하는 대로 모양이 변하는 것이다.
뇌에 힘을 가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면 뉴런이 생기고 연결되어 다발이 된다.
잘못된 신념을 깨닫고 진실을 알 때, 진실을 수용할 때,
기존의 뉴런 다발은 해체되고 새로운 다발이 생성된다.
무엇이든 수정할 수 있다.
이제껏 가져온 체질은 발견하고 수용하는 진실대로 바뀔 수 있다.
그에 따라 인생의 결과 방향도 변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