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물건과 이야기하기
유독 고마운 물건들이 있다.
함께 여러 나라를 여행한 핸드폰과 오래된 커피 머신이 그렇다.
어느 한가로운 날, 10년 가까이 곁에 있어 준 에스프레소 머신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러저러해서 고맙다고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한편으로 우습기도 했지만 고마움이 느껴지는 대상에게 마음을 말하는 것이 좋았다.
마음을 밖으로 꺼내어 보니 할 말이 많았다. 고마운 감정이 선명해졌다.
아무 말 대잔치를 하듯 여과 없이 내보냈던 말들 끝에 뜬금없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그들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어른답지 않은 어른에 대한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가족보다 자기 삶을 우선했던 아버지가 있었고 그런 남편과 시댁 때문에 힘든 엄마가 있었다.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했던 선생들이 있었다.
집도 학교도 엉망이었던 그 시절, 사춘기의 혼란 속에서 자주 죽음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화난 마음은 깊이 쌓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았다.
자기만 옳다는 상사나 연장자를 만나면 깊이 묻어 둔 화가 올라와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여전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저변의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나'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체벌이나 불이익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유가 있다. 어떤 말이든 행동이든 할 수 있다.
나에게도 원하지 않는 건 거부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부모이기에 선생이기에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건 아이에게 절대 원칙 같은 것이다.
나이와 성숙함은 비례하지 않는다.
유치할수록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자기만 옳은 줄 안다.
개인의 선택이고 자유이다.
타인에게 성숙을 요구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한다는 것이 미숙함을 수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직 허용하는 것은 해로운 사람의 말과 행동을 차단할 수 있는 나의 자유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다른 이들의 자유를 하용할 때 나의 자유도 허용된다.
고마운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오글거림을 무릅쓰며 표현했던 사소한 진심이 큰 자각을 주었다.
덕분에 어느 한 부분이 가벼워졌다.
이후로 가끔 마음에 닿는 물건에게 말을 건넨다.
작은 진심의 실타래를 타고 오래 감추어 두었던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어떤 말이든 기억이든, 혹 눈물이든 친숙하고 고마운 그 아이는 다만 들어준다.
늘 옆에 있다. 고맙다.
+ 양자 물리학에 의하면 모든 물체는 동일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제각각의 고유한 에너지와 파동을 가진다.
주변에 널려 있는 물건들도 원자와 에너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미시의 세계에서 그들과 우리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