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몸으로 확장하는 법

온몸 축복하기

by Rumina

자신을 축복해 본 적이 있는가?

자기를 축복하다니, 일단 오글거린다.

그 어색한 일을 가끔 한다.

잠결에 하는 말이 무의식에 잘 스며든다고 해서 잠에서 깰 때에 온몸에 손을 대며 축복의 말을 한다.

십이지장, 쓸개, 창자 같은 아이들도 의식하며 축복한다.

머리에서 발 끝으로 내려가며 인식되는 대로 하나하나 축복하다 보면 낯선 마음이 든다.

가끔 말이 꼬이면서 무색함이 터지기도 한다.

그래서 속으로만 대충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로 뱉는 것과는 다르다.

생각은 언어를 타고 나와야 실재가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축복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구의 사랑도 받을 수 없다.

사랑과 축복은 감각이다.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쏟아지는 사랑 안에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태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심장과 온몸을 쉬지 않고 순환하는 피.

이들을 의식해 보는 것만으로 자신이 다르게 느껴진다.

생각과 감정에 갇혀 있던 의식이 몸으로 확장된다.

몸을 이루는 요소들은 각각의 질서와 생명을 가졌다.

‘사람은 소우주’라는 말은 단지 비유가 아니라 실제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심장은 끝없이 뛰고, 필요한 호르몬이 분비되고, 음식물이 소화된다.

삶도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발버둥 치지 않아도 물에 뜰 수 있다.

심리학자 대니얼 고틀립의 저서 [샘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이 너무나 좋다. 처음 읽었을 때 안도감이 들었다.

“no pain, no gain”이나 “아프니까 청춘” 같은 수없이 들어왔던 소리가 있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인정받기 위해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작은 인정에 목말라하며 나답지 않은 짓들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허탈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문장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해방감 같은 것을 느꼈다. 가만히 있어도 물에 뜨는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진리 하나를 발견한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야 물에 뜨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 상식이 없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될 일을 발버둥 치면서 하게 된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의 섭리 안에 있다.

삶에도 그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의 법칙을 아는 것만으로도 지혜로워진다.

우리의 몸이 질서에 따라 기능하는 것처럼 삶 또한 그렇다.


억지로 일어나 어쩔 수 없이 시작하는 하루와 축복으로 샤워하며 시작하는 하루는 분명히 다르다.

주어진 하루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시작하는 하루, 자신을 축복하며 시작하는 하루에 좋은 일이 흘러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침의 기분이 하루를 좌우한다고 한다.

긍정적인 기분은 긍정적인 일들을 불러오고, 그 경험이 또 다른 긍정의 발판이 된다.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겸손하게 믿는다면, 자연의 법을 따라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담길 것이다.

발버둥 치지 말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발버둥 치면 헤엄칠 수 없다.

가만히 있어도 물에 뜬다는 사실을 알고 물에 뜨는 법을 배워야 수영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그래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다.


부정적인 말 한마디를 지우려면 긍정의 말 일곱 마디가 필요하다고 한다.

외부에서 7배의 긍정적인 말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말은 외부의 말보다 강력하다.

잠시 멈추어 사랑을 담아 자신을 축복해 보자.

축복의 말이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씩 지워나갈 것이다.

몸에서 흐르는 생명과 질서를 느껴보자.

생각의 습관에 갇힌 의식이 몸으로 확장될 것이다.

자신을 축복하는 작은 실천으로 생각에 고인 의식을 몸으로 내릴 수 있다.

생각을 넘어 몸으로 느끼는 삶은 분명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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