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보지 않은 길로 걷기
산책을 할 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걷곤 한다.
일상에 산책이 자리 잡으면서 생긴 습관이다.
프리랜서로 일하기에 종종 근무 환경이 바뀐다. 그래서 걸어 본, 걷지 않았던 길들이 여럿 있다.
일과 중 나를 위해 산책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곧 새로운 길로 걸어보고 싶다는 원함이 생겼다.
한 번도 밟지 않은 땅을 걸으면 그동안 의식에 없던 길이 뇌에 새겨지는 것 같다.
마치 온통 어둡고 일부만 밝은 지도가 발을 딛는 대로 불이 켜지는 것 같다.
의식 안의 공간이 넓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느낌이 좋다.
오래전 나는 길을 잘 찾아다니지 못했다.
고정되어 있는 지형지물도 믿지 못하고 헤매기 일쑤였다.
버스 정류장도 믿지 못해 제때 내리지 못하곤 했다.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어느 아줌마가 ‘들어왔던 문을 기억하지 못해 같은 문으로 나가질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자라거나 이상해 보이지 않았는데 어른이 그럴 수도 있나 궁금했다가 잊혀졌다.
그런데 나도 비슷했다.
방향도 길도 모르겠어서 당황스러운 때가 많았다.
그런 내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아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위축되기도 하였다.
그 아줌마가 무슨 이유로 들어온 문도 기억하지 못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심리적인 이유였다.
엄마와 감정적 심리적으로 한 몸이었던 나는 엄마를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담사는 “엄마보다 똑똑해지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 믿음 때문에 이성이 자라기를 멈췄다”라고 말했다.
엄마를 벗어나는 건 배신이라는 믿음이 의식의 바닥에 두텁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동의가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무의식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 생생하게 알게 되었다.
불안이 많은 엄마는 자기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자기의 뜻을 벗어나려 하면 체벌한다.
해소되지 않은 불안은 자녀를 자녀로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환경의 아이는 전기가 흐르는 철창 안에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 학습된 보이지 않는 선은 성인이 되어서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코끼리의 말뚝] 이론은 학습된 무기력의 대표적 예시이다.
인도에서 사육사가 새끼 코끼리를 훈련시킬 때 다리를 말뚝에 묶는다.
새끼 코끼리는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새끼 코끼리는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기력을 학습한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 말뚝을 벗어날 충분한 힘이 생겼음에도
과거의 경험에 갇혀 탈출할 시도를 하지 않는다.
말뚝을 뽑고 사육사를 밟아버릴 힘을 가지고도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신세로 평생을 산다.
보이지 않는 엄마의 영역을 벗어날 때마다 따끔하게 혼이 나야 하고,
선을 예측할 수 없다면 가장 작은 영역 안에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나가지 않게 된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신의는 모든 자녀들의 숙명이다.
늘 걷던 길만 걷고 먹던 음식만 먹고, 하던 일만 하는 일상의 패턴을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유별나게 불편한 감정이 온다면 주의 깊게 들여 다 볼 필요도 있다.
익숙한 것은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린 시절 마음껏 탐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로 남아있다.
어쩌면 평생 요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우주선을 띄우고 화성에서 사네 마네를 말하는 세상에서
개인의 생은 요람에 묶여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