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하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면 생기는 일

일일일자각

by Rumina

해달은 앞다리 밑에 주머니가 있다.

여기에 아끼는 조약돌을 넣어두기도 한다는데 이게 너무나 귀엽다.

언젠가부터 나도 하루에 돌 하나를 주워 담는다.

내가 줍는 돌은 ‘자각’이다.

하루에 하나, 나에 대해 아는 것이다.

자각은 말 그대로 ‘스스로 깨닫는다’는 뜻이다. 거창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모아 온 나의 자각들은 이렇다.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면 음식은 좋은데 칼국수는 좋지 않다.

동물, 특히 강아지를 좋아했었는데 식물이 더 좋다.

사물이든 일이든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아담하고 실용적인 것,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출출할 때가 아니라 무료하거나 심심할 때 배달 앱을 뒤진다.

물을 마실 때 숨을 쉬지 않는다.

겨울을 싫어했었는데 눈 덮인 풍경을 포근하게 느낀다.


나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모아가다 보니 내가 변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다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언젠가 돈가스가 좋아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커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무료할 때 음식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순간이 오면 다른 활동을 시도한다.

물을 잘 마시지 않았던 습관이 물 공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어 빨대를 사용하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메타인지’라는 능력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의식하는 것이 메타인지이다.

상위 인지, 초인지라고도 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을 제 3자의 시점으로 볼 수 있다.

타인을 보듯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려워지면 왜 그런지 의식의 꼭지를 분리해서 현재의 사건과 감정, 기억을 살펴보곤 한다.

거대한 우주선에 달린 작은 정찰선과 같다.

의식의 제일 윗부분을 띠어내어 마음의 전체 영역을 두루두루 탐사하는 것이다.

명상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지 않아도 된다.

일상 중에서 마음과 감정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자각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행동과 선택의 기준이 타인과 환경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모난 돌’ 취급을 하며 불편해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모르면 누가 나를 아는 걸까?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존중받을 수 있을까?

이것은 까다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선택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행복해진다.

물론 매번 원하는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택을 양보하는 것과 원함이 뭔지도 모르고 주어지는 대로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얼마 전까지 주는 밥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고를 필요 없이 주는 대로 먹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인 ‘식’ 마저도 나는 참 성의가 없었다.

그만큼 자신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몸에 들어가는 것을 타인의 선택이나 외부에 맡기고 싶지 않아 졌다.

나는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다.

일상에서 소소히 모아 온 자각들이 준 선물이다.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만이 보석이 아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보석이 있다.

해달이 돌 하나를 간직하는 것처럼 하루에 하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것들이 모이면,

어느 날 이전과는 다르게 반짝거리는 ‘나’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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