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정말 생의 기본값일까?

가장 힘든 사람, 힘든 상황 생각해 보기

by Rumina
너 자신을 알라!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앞마당에 새겨져 있던 이 말은 인간의 삶과 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유명한 격언 중 하나이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문답법에서 ‘무지(無知)의 지(知)’, 즉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고 했다.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눈을 감은 채 살아가는 것과 같다.

눈을 감은 삶 속에서 더듬으며 확신하고, 멋대로 판단하고 오해한다.


오래 심리적 통증으로 힘겨웠는데도 깊은 이유가 무엇인지 쪼개서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교에서도 인생의 괴로움은 끝이 없다 하고 기독교와 천주교에서도 고난이 신자의 길이라고 한다.

죽지 못해 산다고 하는 표현도 들려온다.

힌두교의 성지인 바투 동굴에서 타이푸삼 축제를 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쇠붙이로 피부를 뚫고 맨발로 뜨거운 땅을 밟았다. 272개의 계단을 올랐다.

신체에 고통을 주는 고행을 통해 1년 동안 지었던 죄를 신 앞에 사죄하는 참회 의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고난은 여러 이유로 당연했다.

뿌리 깊은 고정관념 속에서 아픔은 그저 생의 기본 값이려니 생각했다.


나는 갑작스럽게 바뀌는 상황에서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

이유를 알게 된 후 많이 나아졌음에도 아직 불편하다.

살다 보면 상황이 바뀌기도 하고 급하게 방향이 틀어지기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기로 했던 일이 취소되기도 하고 약속이 번복되는 것은 일상의 일이다.

이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용납이 안되어 패닉에 빠지곤 했다.

이 당연한 일로 누군가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여기며 멀리하기도 했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에겐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도 당연하지 않게 된다.


7살 무렵 가족들과 계곡에서 놀다가 생긴 일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건너편에 있던 아빠가 수영을 가르쳐준다며 불렀다.

아빠는 나를 튜브에 앉히고 몇 번 흔들다가 장난을 치며 뒤집어 버렸다.

머리까지 물에 빠졌다가 나오며 크게 우는 나를 보며 아빠는 웃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가 머리를 감겨 줄 때에도 물이 무서워서 울었다.


가족끼리 장난을 하는 건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부모이기에 의심 없이 올라탄 튜브가 뒤집혀 물에 빠진 사건은 아이에게 자연스럽지 않다.

죽음의 공포를 부모에 의해 경험하는 건 자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는다.

이 사건으로 물에 큰 공포가 생겼고 사람과 상황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느닷없이 상황이 바뀌면 이때 느꼈던 복잡한 감정과 몸의 감각들이 살아나 혼란에 빠졌다.

이 경험이 오랜 시간 내게 미친 영향은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들다.

이런 강렬한 경험은 공포와 배신, 슬픔 등등의 감정과 뒤섞여 의식 아래에 묻힌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성인이 되어 경험한 충격적인 일도 트라우마로 남아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트라우마는 몸과 마음을 그 시간에 가둔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어김없이 올라와 과거의 일을 생생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에 몸은 과거로 돌아간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다.


어떤 경우에서 올라오는 과도한 감정은 증상이다.
아무 일 없어도 저변에 깔려 있는 불편한 감정들은 증상이다.
증상에는 원인이 있다.

뿌리가 없는 감정과 통증은 없다.

들여다보면 모두 과거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이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이 자기를 이해하며 진짜 ‘나’를 만나는 일이다.

힘겹게 가져온 덩어리들을 쪼개어 ‘왜?’를 생각할 때 이해의 가능성이 열린다.
감정의 습관에서 풀려나며 과거에 맺혀 있는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해제되는 고통의 영역만큼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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