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버다이빙
물 공포를 극복해 보겠다고 스쿠버다이빙을 한 적이 있다.
바다로 가기 전 수영장에서 연습할 때부터 후회가 밀려왔다.
마우스피스를 물고 물속에서 낯선 방식으로 호흡하는 연습을 하고 바다로 나갔다.
체험 다이빙은 가이드와 함께 바다 아래로 내려간다.
가이드가 뒤에서 잡아주고 체험자는 두 팔을 마음대로 움직이며 물속을 체험하게 된다.
가이드가 손을 놓았을 때 큰 공포가 밀려왔다.
자꾸만 손을 잡았지만 그는 원칙대로 손을 놓으려 했다.
말을 못 하니 마음을 전할 길이 없었다.
누군가의 손을 그렇게 간절히 꽉 붙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낯선 환경과 호흡마저 어색한 곳에서 가이드의 손은 단 하나의 생명줄 같았다.
뒤에 있다는 사실과 믿음만으로 두려움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
결국 호흡을 놓쳤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바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라와야 했다.
낯선 호흡과 가누어지지 않는 몸, 보이지 않는 시야.
가이드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던 그때의 체험이 신생아가 겪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사람은 큰 충격과 함께 태어난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죽음을 먼저 경험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생소한 곳에서 의지할 것은 보살펴 주는 사람의 손길과 체온뿐이다.
아기는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자기 팔에도 놀란다는 것이 얼마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볼비는 아동발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생애 초기의 애착 형성이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양육자와 애착이 잘 형성되지 않으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가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애착이론]을 정립했다.
양육자가 아기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주어야 아이는 세상을 믿고 탐험할 수 있다.
안전기지가 없는 아이들은 어디까지 나가고 어디로 돌아올지 모르게 된다.
낯설고 무서운 물속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버둥거렸던 것과 같지 않을까 싶다.
한결같고 신속한 반응으로 신뢰를 주는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요구에 반응하지 않거나 일관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양육자와는 불안형, 회피형, 불안회피가 섞인 혼란형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나는 회피형이었다. 시작은 불안이었을 것이다.
원할 때 손을 주지 않아서 불안하고 집착했다가 울고 울어도 그 손이 내게는 영 오지 않아서 포기한 것쯤 되는 것 같다.
불안, 회피형인 사람들은 살아도 살아도 인생이 낯설다.
낯선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있던 세상이 무너지고 던져진 세상에서 여전히 던져진 채로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과호흡이 오고, 과호흡을 넘어 공황이 오기도 한다.
숨을 쉬지 않고 버티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착 유형은 바뀔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의 반복을 통해 안정애착을 배워갈 수 있다.
불안형이라면 믿을 만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작은 약속이라도 지켜주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며 신뢰감을 쌓는 연습이 필요하다.
회피형이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되, 점차 다른 사람과 시간을 공유하며 관계의 중요성을 체험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호흡하는 연습이 된다.
이렇게 천천히 세상과의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애착 대상이 제공하는 안전기지를 떠나
길거나 짧은 일련의 여행으로 구성될 때 가장 행복하다.
-존 볼비 -
모든 사람에게는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편안히 숨 쉬며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세상에 나갈 힘을 얻을 곳.
안전기지가 따뜻하고 한결같은 어느 사람이라면 좋겠다.
부모이거나 가족인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여러 이유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마음 편하게 몰입할 수 있는 소소한 취미여도 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어도 된다.
좋은 문장이 가득한 책이나 침묵으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도 안전기지가 될 수 있다.
믿는 신 앞에 머무는 시간이나 무조건 사랑해 주는 반려 동물과 식물도 좋겠다.
무엇이 쉼이 되고 에너지가 되는지 적극적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알아야 한다.
숨쉬기가 조금이라도 힘들어지면 안전기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쉼을 얻고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쉼에 대한 감각도 다시 세상을 탐험할 에너지가 충전되는 감각도 알게 된다.
안전기지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변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어느 날 안전 기지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모든 곳, 모든 날이 다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