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목소리를 바꾸고 싶다면

확언하기

by Rumina

사람마다 ‘셀프 텔러(self teller)’가 있다고 한다.

자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내 안의 나’를 의미한다.

평상시에는 말이 없다가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나타나 속삭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냈다면 셀프 텔러는 이렇게 나뉠 것이다.

첫째는 부정적 목소리이다.

‘어떡해~ 벌 받은 거야, 나는 왜 항상 이런 일만 생길까.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구나.

내 잘못이야, 난 벌 받을 만 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반면, 긍정적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고가 났네. 그래도 사람이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야. 더 조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어.

괜찮아, 일이 생겼으면 해결하면 되는 거야. 보험 부르자.’


셀프 텔러의 뿌리는 가까이에서 들어온 가족의 말이다.

가장 친숙하게, 가장 영향력 있게 들어왔던 부모형제의 말이 내재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막내 동생을 자주 놀렸다.

귀여운 동생을 ‘못생겼다’는 말로 자주 울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상처였을까 싶다.

막내는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꼭 내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지금은 만나면 예쁘다고 말해 준다.

예쁜 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도 이야기하지만 그 말은 닿지 않는 것 같다.

형제의 말도 아이의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막내의 무의식에 내 목소리가 남아 끊임없이 ‘넌 못 생겼어!’라고 속삭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만나면 예뻐하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어는 에너지이다.
물결치는 파동이다.

어느 마음에 기어이 닿아 영향을 미친다.

셀프 텔러가 긍정적으로 바뀌려면 좋은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긍정적인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에게 가장 효과가 좋았던 건 ‘확언’이다.

한 때 아침마다 10개의 확언을 기록했다.

그중 하나가 ‘나는 아무 편견과 판단 없이 세상과 사람을 대합니다.’였다.

어느 해가 쨍한 오후, 운전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판단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며 눈물이 났다.

차 안이라 눈물이 나는 대로 두었다.

‘이제부터 판단하지 말아야지! 판단하지 않겠어!’가 아니었다.

‘왜 판단했을까?’ 후회나 죄책감도 아니었다.

사람과 세상을 어떤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말 그대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몇 주일을 가져온 언어가 싹을 틔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후로 각 사람의 입장과 상황의 다양한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지고 싶은 언어와 몸에 새기고 싶은 언어가 생겼다. 확언으로 기록했다.

그렇게 쌓이는 언어는 내면을 변화시켰다.

변화는 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인생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 단지 좋게 보는 관점과 나쁘게 보는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란 원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제로 여기는 마음이 문제일 뿐,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예전 나의 셀프 텔러는 꼭 악마 같았다.

어떤 일이 생기면 벌 받는 느낌이 들었다.

‘네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네 탓이야!’라고 말했다.

요즘 내 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다 괜찮아,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돼.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기에,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도 생길 수 있는 거야.

인생은 경험하는 거야. 모든 것은 다 내게 유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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