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흐르는 두 줄기의 강

자연 안에 머무르기

by Rumina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어둠에서 빛을 분리했고 공간과 물을 나누었다.

다시 물과 뭍을 갈라 땅을 드러냈다. 땅 위에 온갖 나무와 식물이 자라게 하였다.

동물과 가축이 있게 하였다.

하늘에는 새가 날아오르게 하였으며 물에는 각양의 물고기가 있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형상대로 지은 나를 불렀다.

모든 것에 이름을 짓게 하였다. 다스리게 하였다.

질서대로 피고 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고 새와 물고기 온갖 동물과 식물의 애정을 받게 하였다.

바람마저 나를 사랑하여 이마에 부드럽게 머물다 가곤 하였다.

오래된 책 성경에 나온 이야기이다.


태초에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은 온통 어둠과 비명, 눈물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알 수 없는 가시들이 온몸을 찔러댔다.

목에 감긴 것들은 날이 갈수록 죄어 왔다.

마치 목에 물이 차올라 꼴깍거리는 것처럼 겨우 숨을 쉬었다.

세상에는 믿을 것이 없고 믿는 것은 곧 속는 것이고 이용당하는 것이었다.

벗어나려 하면 비난이 몽둥이처럼 날아와 온몸을 구타했다.

내가 어둠인지 어둠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아무것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채로 제 목만 조르며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트라우마에 갇혀 모든 화살을 자기에게 겨눈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는 큰 강이 하나 흐르는 것 같다.

그것은 사랑이기도 하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가 나일강을 기반으로 번성했던 것처럼 내면의 강에 따라 사랑이 번성하기도, 두려움이 번성하기도 한다.

같은 풍경이라도 들려오는 음악에 따라 다른 느낌과 분위기가 되듯 내면에 흐르는 이야기에 따라 생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진다.

생명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끝없이 순환한다.

어둠을 행하면 어둠이 확장되고 빛을 향하면 빛이 확장된다.

방향을 정하는 키는 사람에게 있다. 이것이 ‘자유의지’이다.


모든 사물과 감정은 그림자를 가지지만 생명엔 그림자가 없다.

생명의 반대는 언뜻 죽음 같지만 죽음은 생명의 그림자가 아니다. 생명의 한 작용이다.

생명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생명 안에 우주가 있다.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은 ‘신’ 일 수도 있겠다.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은 우울증을 깊이 연구한 학자이다.

우울증이 부정적이고 왜곡된 사고와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우울증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지삼제’라는 개념을 말했다.

나, 세상, 미래 세 가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지패턴이다.

‘나는 무가치한 사람이야,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모, 역시 난 안돼’라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세상에 믿을 사람은 없어. 눈 떠도 코 베이는 게 세상이야. 아무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을 거야’라는 세상에 대한 불신감.

‘앞 날이 좋아질 리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틀림없이 가난하고 불행해질 거야. 희망이 없어.’라는 미래에 대한 단정이다.

우울증의 깊은 뿌리는 두려움이 아닌가 한다.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딛고 선 세상을, 나아갈 미래를 모두 부정한다.


만일 사랑을 더 많이 체험하고 감각하였다면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 실재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편안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빛처럼 쏟아지는 사랑에 어색함을 넘어 고통을 느낀다.

무엇이 진짜 세상일까? 아마도 선택일 것이다.

생생한 두려움을 진실로 믿고 산다면 영원히 그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어색해도 사랑, 그것의 실재성을 믿고 받아들인 다면 이미 주변에 가득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스에 나오는 험악한 이야기들에 세상이 무섭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일상에는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 손 내밀면 언제든 돕는 손길이 있다.

질서 안에 있는 두려움은 위험을 감지하는 신호가 된다.

하지만 제자리를 벗어나 거대해진 두려움은 삶을 마비시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자연은 바라는 것 없이 주기만 한다.

우리는 이미 자연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이 허상일리 없다.

자연의 질서와 사랑을 보고 만지고 느껴본다면, 함께 호흡해 본다면,

어느 순간 거대해진 두려움은 제자리로 돌아가고 ‘사랑’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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