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 만들기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를 노트에 적어 본 적이 있다.
몇 가지를 써내려 가던 중 맛이 없는 사과를 버리지 않고 잼을 만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 사소한 일이 행복을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이 신기했다.
희미하지만 분명히 좋았다.
버리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활용한 것이 인생을 성의 있게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날엔 과일 봉지 그대로, 채소 봉지 그대로 썩혀서 버린 일이 허다하다.
그때마다 은근한 후회와 자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더 멀리 보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도 있다.
음식이 남아돌아 버리고 심지어 그대로 썩혀서 버리는 일이 당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의식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다.
사과를 얇게 썰어 냄비에 넣는다.
흡수가 덜 된다는 자일리톨 설탕을 1:1의 비율로 붓는다.
있다면 시나몬 가루를 살짝 넣어도 좋다.
사과가 물러질 때까지 휘적휘적 저어가며 끓이면 사과는 잼으로 다시 태어난다.
달콤한 잼이 되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썩어서 버려질 뻔한 사과는 이렇게 새 생명(?)을 얻었고 나는 내심 흐뭇했다.
가만히 보면 행복은 무엇을 가지는 데서 오지 않는다.
쉽게 물러서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을 확인하는 데서 가장 크게 오는 것 같다.
‘자기 효능감’이라고 한다.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기대와 신념을 뜻한다.
처음 했던 잼 만들기가 행복의 기억으로 남은 건,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찾으면서 느꼈던 ‘효능감’ 때문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일이겠지만, 늘 일을 우선순위로 하고 삶을 챙기지 않았던 나에게는 사건이었다.
나는 그때, 잼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때, 과일과 채소가 썩는 것을 방치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때, 삶으로 내려앉아 미세하지만 분명한 행복감을 느낀 사람이 되었다.
‘능력 = 돈’이 되어 버린지는 오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수입이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대변하는 것 같다.
그 능력을 가지기 위해 자격을 갖추느라 다들 고생이다.
한 때, ‘나이에 부끄럽지 않은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제는 의문이 든다.
‘능력 = 돈’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면,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
사물을 다르게 보는 능력, 시들어가는 것에 생명을 주는 능력,
쏟아지는 햇살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능력, 자주 미소 짓는 능력,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탄하는 능력, 좋은 사람에게 더 좋게 대하는 능력,
좋지 않게 느껴지는 사람이어도 친절할 수 능력,
힘든 사람을 따뜻하게 격려할 수 있는 능력 등.
몇 페이지를 가득 채워도 부족할 만큼 많다.
‘나는 억압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누군가 “너는 억압에 저항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아, 그렇구나!’
한 번도 저항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인정되었다.
“저항자였다”는 말에서도 효능감을 느꼈다.
저항은 늘 더 큰 압력으로 눌려 ‘저항’은 없고 ‘억압’만 남아 그렇게 생각했었다.
“억압된 자”가 사는 세상과 “저항한 자”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
억압된 자로 사는 세상은 무엇을 해도 소용없고,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 곳이다.
저항한 자로 사는 세상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바꿀 수 있는 곳이다.
그 작은 것이 점점 커지는 곳이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이라도 바꾸고 무엇에 라도 닿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함부로 행동하고 말하지 않는다.
작은 일에서라도 자신의 영향력을 느끼는 일은 새로운 감각을 준다.
썩어가는 과일을 잼이나 청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새 생명을 주어도 좋고,
시들어가는 화분에 물을 주거나 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주어도 좋다.
아니면 그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미소 지을 수 있음’을 새롭게 체험해 봐도 좋겠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안에서 안 새면 바깥에서도 새지 않는다.
삶의 작은 부분에서 체험하는 능력은 큰 일에서도 발휘된다.
안에서 열심히 새다 보면 바깥에서 엄청 크게 새는 바가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