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사진 찍기
영정 사진이라는 말은 영 생소하다.
한복 입은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병풍과 향, 저승사자도 함께 생각난다.
까만 도포에 창백한 얼굴, 검은 입술의 저승사자는 옛날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연출자가 꾸며 낸 근거 없는 이미지인데 암암리에 저승사자의 원형이 되었다.
죽음에는 알 수 없는 관념들이 많이 덧칠되어 있다.
지인 중에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타이틀로 영정사진을 찍는 작가가 있다.
세상에 남길 마지막 말을 적어서 손에 들고, 남기고 싶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젊은 날의 초상’ 속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흑백 사진에 담긴 웃음과 눈물은 진실하고 깊었다.
그들이 손에 든 마지막 언어는 평범하면서도 묵직하게 퍼지는 각각의 무언가를 전해주었다.
그 사진들 덕분인지 이제쯤 인생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유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선뜻 써지지 않았다.
가끔씩 죽음을 생각했으면서도 유서를 쓰면 진짜 죽음이 올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몇 년 만에 만난 지인과 안부를 나누었다.
작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추모공원에 자주 가본다고 했다. 여러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골함 앞의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 사진과 작은 신발을 이야기하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자신도 한강 다리 위에 서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살면서 스치듯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죽음으로부터 도망가느라 죽음 앞에 서는지도 모른다.
대화는 끝나고, 작은 흑판과 단 둘이 남았다.
차분한 음악 속에서 세상에 남길 마지막 말을 생각했다.
함께 해서 좋았어.
모든 날이 좋았어.
살아서 좋았어, 덕분에.
안녕-!
역시나 언어는 사람을 향했다. ‘살아서 좋았다’는 말이 어색했지만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흑판을 들고 세팅된 공간에 앉았다.
사위가 온통 검은 공간 속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췄다.
생각도 못한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마음이 깊게 내려앉았다.
빛 너머에서 몇 가지 질문이 들려왔다. 질문을 따라 진짜 삶의 끝에 닿은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이제 내가 나에게 말해야 했다.
잘 살아줘서 고마워.
내가 나여서 좋았어.
모든 상처를 안고 성한 곳이 없어도 잘 살았다. 그런 내가 대견했다.
그렇게 죽음 앞에서 몇 장의 사진을 남겼다.
죽음을 마주한 자신의 표정을 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뜻밖의 언어와 낯선 표정을 만났다.
내가 대견했다. 길고 짧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고마웠다.
생의 가장 어두운 날들마저도 살아있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살아온 만큼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인데 왜 두려움이 되었을까?
공포를 덮느라 ‘불멸’이라는 망상이 일어난다.
그 착각 속에서 오히려 생의 의미를 놓친다.
죽음을 수용할 때 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살게 된다. 죽음을 인정할 때 삶이 빛난다.
죽음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사랑하지 않았음이 슬펐다.
의식 밖으로 밀어 두었던 마음이 죽음 앞에서 드러났다.
죽음은 자기의 자리에 있다.
터부시 한다고 멀리 있지 않고 부른다고 안겨오지 않는다.
담담히 죽음 앞에 서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유한하여서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껏 함께 온 ‘나’는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운지.
크고 작은 삶의 일들이 살아있기에 만날 수 있었던 반짝이는 조각조각이라는 것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덕분에 제대로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