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긴 여행 떠나기
처음으로 혼자 42일의 긴 여행을 다녀왔다.
간소하게 꾸린 짐을 배낭 하나에 넣어 메고 홀홀하게 집을 나섰다.
여권과 휴대폰, 얼마간의 유로와 카드가 있으면 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 생각이다. 그때엔 짐이 적은 만큼 걱정이 컸다.
빠진 것이 없나 하는 생각에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 가시 질 않았다.
떠나는 날, 멈출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 같았다. 아득했고 걱정이 앞섰다.
인생도 그렇구나 생각했다.
올라서면 도착할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여정. 시작부터 피곤함이 몰려왔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자신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의도적으로 혼자가 되어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 서면 오직 ‘나’만이 남는다.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감정과 생각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다.
단,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일은 일상에서도 가능하다.
그것이 어렵기에 의식적으로 ‘혼자’를 선택해 자신을 경험하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자기 자신의 안전은 확보하지 못한 채,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나중에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욕구에 이끌려 가고 만다.
자신의 감정을 믿을 수도 없고 경험하지도 못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자기 스스로에게도 낯선 존재가 된다.
- 천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드라마 / 엘리스 밀러 -
가장 편하고 친해야 할 자신과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있다.
자기 안에서 가장 위태로운 사람이 있다.
모든 감정과 선택의 주권을 상황과 타인에게 맡긴 채 진정한 원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의 진짜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의 속살을 경험하고 싶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여행 초반에는 나에게 쫓겨 다녔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다음 장소로, 다음 일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이 끊임없이 바빴다. 멈추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알아차린 후엔 마음에 쫓겨 다니지 않기를 기도하며 걸었다.
기도가 필요할 만큼 마음은 이유 없이 나를 내몰았다.
천천히 걸음이 느려졌다.
상황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그 상황에서 내 마음은 어떤지 바라보았다.
길 위에는 친절한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있었다. 배려 속에 함께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한 번도 무엇이 곤란한 적이 없었다.
원함에 충실하게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우연에 맡기며 찾아간 식당에서 잊지 못할 식사를 하기도 했다.
쉬고 싶을 때 머물러 쉬었고, 혼자 걷고 싶을 땐 그렇게 했다.
그렇게 현재와 나, 원함에 스며들었던 여행은 완벽했다.
영웅의 이야기는 모두 길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제자리에 머물면, 그 자리의 일만 반복되어 벌어질 뿐이다.
영웅은 길에서 많은 일을 겪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문제를 해결한다.
생의 이유와 목적을 발견한다. 그 후엔 단단하게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걷는 걸음은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방향이 있기에 수정도 할 수 있다.
방향도 목적도 없이 헤매는 걸음은 멈추어 쉴 수 없다.
애초에 정함이 없기에 방향을 수정할 수 없다.
인생 자체가 자신을 찾는 긴 여정이다. 이 길 안에서도 떠나야 한다.
오래 가져온 마음에서 떠나고 옛 체질에서 떠나야 한다.
익숙한 생각과 감정, 맥락에서 떠나야 한다.
매 순간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생장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성당까지 약 800km의 길을 질 만한 짐과 무탈하게 걸었다.
긴 시간을 오직 나에게 집중하였다.
과거가 재해석되었고 어떤 마음과 생각들은 통합되었다.
무겁게 가지고 있던 내면의 무엇들도 질 만한 짐이 되었다.
그리하여 인생 또한 걸을 만한 길이 되었다.
40일가량의 여정을 발의 물집 하나 없이 걸었다.
이 사소한 사실이 가장 큰 감동과 감사로 다가왔다. 그래서 또 신기했다.
낯선 자기를 경험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여행 전의 나와 후의 나는 다르다.
여행은 일상으로 이어졌고 나는 여전히 ‘나’와 함께 걷고 있다.
생을 다 마친 후 혹 신이 있어 만난다면,
’걸을 만한 길을 질 만한 짐을 지고 잘 걸었다.’고
’간간이 크게 기뻤고 자주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