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중용의 덕,
때로는 생존을 위한 길

'중용'을 실천하기

by Rumina

고등학교 때 처음 ‘중용의 덕’이란 말을 알았다.

선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덕이라고 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는 관점과 행동을 말한다.

뜻이 좋아 마음에는 담았으나 정확히 무엇인지는 한참 후에 알았다.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날마다 깨어서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에 ‘덕’이라 하는 것이다.


행복해지려면 중용의 덕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중용의 덕을 어쩌다 하루 실천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


‘중용’은 공자에게서 나온 말인 줄 알았는데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오래전 기록된 성경에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이 말은 ‘사람은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존재’라는 뜻일 것이다.


6.25 전쟁 때 마을 주민들이 숨어 있었다.

어두운 밤에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발각되었다.

군인들은 총을 겨누고 플래시를 비추면서 민주주의 편인지 공산주의 편인지를 물었다.

한쪽을 맞추어야 했다. 대답에 따라 몰살당할 수 있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우리는 무식해서 그런 거 모른다.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라고

말해서 자신과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


어느 게시글에서 보았는데 기억에 남았다.

자신은 둘 중의 하나를 말해서 총 맞고 죽었을 거라는 댓글이 많았다.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네가 알려줘라”라고 말한 것에 감탄이 나왔다.

나는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다 총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에라 모르겠다’하며 50%의 확률에 목숨을 내던졌겠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길인 것 같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역시 6.25 전쟁 때,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절벽에 사람들을 차례로 세우고 “하나! 둘! 셋!”하고 총을 쏘았다.

총에 맞은 사람들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순서가 다가오면서 공포는 극에 달했고 억울한 마음과 온갖 생각들이 올라왔다.

문득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떠올랐다.

마침내 절벽 앞에 섰고 군인들이 총을 겨눴다.

“하나! 둘!”에 뛰어내렸다.

군인들이 절벽 아래로 총을 쐈지만 다행히 맞지 않았다.

위로 시체들이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 군인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93세까지 살았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극단의 중간을 찾는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한쪽을 택해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기존의 선택지를 넘어선 지혜로운 해결책이 필요하기도 하다.

중용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는 지혜의 과정이다.

“제3의 선택”이 포함된다. 환경이 던지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능력이다.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는 생존과도 연결된다.

지식이 아닌 지혜의 영역이다.


지혜와 자유는 동전의 양면이다.

지혜 없이 자유로울 수 없고, 자유 없이는 지혜로울 수 없다.

언어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는 것처럼,

중용을 선택하고 연습하다 보면 지혜와 자유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지혜가 곧 자유를, 언젠가는 기회를, 언젠가는 바라는 것들을 가져다줄 테니

무엇보다 해야 할 것은 일상에서 중용을 실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말과 행동에서 한걸음 떨어져 ‘무엇이 제3의 선택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 지혜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이렇게 선회한 방향에서 지혜가 주는 가르침을 배워가는 것이

그 옛날 선비들이 노력했고 고대의 철학자가 말했고, 오래된 책이 말한 행복한 ‘덕’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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