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시간이 주는 선물

침묵하기

by Rumina

침묵,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였다.

무표정으로 말이 없는 사람은 놀지 않던가 웃게 해야 했다.

무리에서 함께 웃고 떠들 때에 별 반응이 없는 사람에게는 신경이 쓰였다.

말도 반응도 드문 친구와는 자연히 멀어졌다.

그런 사람 옆에서는 답답함이 밀려와 힘겨웠다.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도 대화가 끊이지 않아야 했다.

잠시의 침묵도 어색했다. 조용함이 견뎌지지 않아 늘 먼저 말을 꺼냈다.

내 말을 끝으로 대화가 끝나면 마음이 쎄-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와서는 늘 진이 빠져 뻗었다.


살면서 가져온 여러 가지 오해가 있다. 그중에 침묵이 있다.

침묵이 벌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에 흐르는 정적이나 옆 사람의 침묵이 차갑고 따가웠다.

침묵이 무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의도적인 침묵으로 아이를 냉대하는 일이 있다.

까닭 모를 침묵에 아이는 온 세상이 입을 닫고 자신에게 벌을 주는 것처럼 느낀다.

그 느낌을 가슴 한 켠에 가지고 자라면 침묵을 부정적인 메시지로 여기는 성인이 된다.

침묵이 불안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성숙에서 멀수록 고요함에서도 멀다.

늘 자기를 알아 달라고 있는 말, 없는 말로 떠들어 댄다.

혹은 자기가 괜찮은 건지, 살아는 있는 건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세상이 소란스러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 안셀름 그륀(가톨릭 영성가) -


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을 때 어색했다. 불안했다.

습관적으로 사람들과 섞여 웃고 장난을 치게 되기도 했다.

잘 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다만 지향했다.

누군가 ‘너 화났냐?’고 물어볼 것만 같았고 마음으로 한참을 변명하기도 했다.

천천히 어색함이 잦아들었다.

필요한 말만 하니 어느 부분은 오히려 편안했다.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화났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뭔가 최적화된 기분이 들었다. 적당한 느낌이 좋았다.

간간히 심심한 마음도, 재미없는 마음도 들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의심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너지가 남아도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을 보게 되었다. 밤에는 달이 예뻤고 낮에는 구름이 예뻤다.

비둘기 무리에 섞여 있는 참새를 보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고요 속에 자연이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모든 사물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다가왔다.

태초 이후 우주는 단 한순간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침묵 안에서 세상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고요함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일에서 때때로 경이로움을 느낀다.

침묵 속에서는 타인의 표정이, 거리의 풍경이, 내 마음의 작은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일상에서 온전한 침묵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입을 닫으면 마음이 크게 떠들어 힘겹기도 하다.

고요를 선택했을 때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침묵을 오해하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침묵을 오해하고 있는지 모른다.

침묵뿐일까? 오해 속에 멀리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침묵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기 소리를 내야 사는 것 같은 세상이니까.

세상의 온갖 잡다한 소리와 섞여 살았으니까.

어떤 면에서 그 소리들과 우리는 하나이니까.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침묵으로 물러났을 때 보이는 다른 세상이 있다.

어떤 세상이 보이는지는 해봐야 안다.

하루가 힘들다면 몇 시간이라도 정하여 보내는 침묵의 시간.

출근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 혹은 잠들기 전 침대에 누운 시간.


침묵의 시간이 쌓이면 안개가 걷히듯 소란함이 물러난 다른 세상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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