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아픔에도 울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수용하는 하루

by Rumina

침묵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입을 다물면 내면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꾹꾹 눌러 둔 오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올라온다.

정체 모를 것들을 마주하는 것보다 관심을 소란함에 두는 것이 쉽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사람을 찾거나 대중매체로 숨어드는 것은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픔과 눈물에도 오해가 깊을지 모른다.

상처는 충분히 아파해야 하고, 오래 묵은 눈물은 다 흘려야 한다.

‘엄살떤다’ ,‘유난 떤다’ 따위의 말을 들을 까봐, 누군가 꼭 그렇게 비난할 까봐 감정을 눌러버린다.

혹은 아무것 아니라고, 고작 이딴 것 가지고 울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린 시절, 운다고 더 혼났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우는 것은 당연한데도 말이다.

당연한 아픔에도 울지 못하는데, 다른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다른 일들은 제정신으로 하고 있는 걸까.


울지 않아야 할 사소한 아픔은 없다.

햇빛이 눈이 부셔 아파도 아픈 거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아픔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두어야 한다.

사람에게 먹고 자는 일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감정이다.

그런데 감정이 낯선 사람이 있다.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지금 느끼는 것이 당혹감인지 부끄러움인지, 불쾌함인지 은근한 화인지 알지 못한다.

몸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한 부분임에도 자세히 보는 일이 드물다.

짜증으로 퉁 치거나, 그저 우울함으로 덮어 버린다.


감정은 신호이다.

빨간 불이 들어오면 멈추고 노란 불에서는 서행을 한다.

파란 불이 들어오면 가던 길을 거침없이 간다.

이처럼 슬픔이 올라오면 멈추어 쉬고, 분노가 올라오면 무엇이 무너졌는지 살펴야 한다.

기쁨과 행복에선 즐겁게 가던 길을 간다.


감정은 상태를 알려주고 보호해 주며 행동에 동기 부여를 해주는 메신저이다.

그런데 감정을 외면하고 억누르기만 하면 통제되지 않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감정이 신호의 역할에서 벗어나면 말과 행동의 주인이 된다.

진짜 원함과 의지가 아닌 알 수 없는 감정대로 휘둘리며 행동하게 된다.


감정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알아 봐주고 보살펴주면 긍정적 에너지가 되지만, 모른 체하고 억누르면 알아줄 때까지 떼를 쓰고
시한폭탄처럼 부글부글 끓다 언젠가는 폭발하고 만다.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일단 삶이 쉬워지고 가벼워진다.
- 가짜감정, 김용태 -


가장 많이 억누르는 감정은 ‘분노’이다.

분노는 자기 영역을 지키게 하는 감정이다. 경계를 침범당하면 사람은 화가 난다.

일종의 자기 보호 시스템이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인격을, 원함을 존중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는 경계가 자주 침범 당한다.

아이는 화가 나지만 그것이 ‘화’인 줄 모른다.

양육자에게 화를 내면 생존이 어려워지니 할 수 없이 덮는다. 타협한다.

생존 본능이다.

여기서 자아는 분리된다.

화가 난 진짜 자기를 뒤로 하고 환경과 타협한 가짜 자기로 살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가짜 자아는 양육자의 시선과 기대를 내면화한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압하면서, 스스로를 비난하는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깊이 묻어둔 분노를 마주 보지 않기 위해 다른 감정들도 함께 억압된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감정은 한 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감정을 그대로 본다는 건 쉽지 않다.

소화되지 않은 감정과 기억이 폭발할 듯이 솟구치기도 한다.

오래 방치된 집을 처음 청소할 때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처럼 오래 묵은 감정을 대할 때에도 처음엔 힘에 겹다.

처음 해 보는 낯선 일이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쓰레기인지 집인지 모를 곳에서, 쓰레기인지 자기인지 모른 채 살아가지 않으려면 두 팔을 걷고 청소를 해야 한다.

하다가 지치면 쉬어도 된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하나 둘 보아내고 걷어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다.

다시 쓰레기가 생기고 제자리를 벗어난 물건이 생겨 어질러져도, 이젠 치우기가 쉬워진다.

가만히 마음에 귀 기울이고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비난도 판단도, 억압도 없이 수용하는 하루.

무엇이 올라와도 ‘그랬구나, 나 지금 그렇구나’ 하며 조용히 들어주는 하루.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자신만이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당연한 선물이다.


+ 나으려고 아픈 거다. 아프지 않으면 낫지 않는다.
어정쩡하게 아프면 어정쩡한 채로 오래간다.
아프면 마음껏, 매우 집중하여 아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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