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대로 청소하기
청소는 늘 미루는 일이었다.
물건 정리는 할 수 있었지만 쓸고 닦는 일은 어려웠다.
너저분함을 견디며 살다가 한계에 닿으면 몰아서 하곤 했다.
그러니 청소는 늘 하루가 통째로 필요한 큰 일이었다.
언제나 마지못해 하는 노동이며 누군가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대행업체에 맡기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도서 [청소력]에서는 ‘내가 사는 방이 나 자신이며 방이 더러운 사람은 불행한 느낌이 강하다.’고 한다.
운이 잘 풀리려면 집이 깨끗해야 하는데, 공간을 적극적으로 정리하며 부정적인 에너지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책에서는 ‘공간 모욕은 자기 모욕’이라고 한다.
어느 순간 궁금해졌다.
책에서 말한 대로 얼룩과 곰팡이가 있는 곳에서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면,
이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을까?
이것 만으로 정말 운이 좋아질까?
구석구석 뒤져가며 쓸고 닦았다.
정화하겠다는 마음으로 보니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이 많았다.
집중해서 청소하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지고 방의 구석구석이 마음에 새겨지는 듯했다.
내가 사는 공간의 모든 부분을 알게 되었다. 마치 내 몸이 공간으로 확장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부정적인 에너지가 사라진 것인지 깔끔한 공간으로 무언가 좋은 일이 올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이 과정을 통해 발견한 것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요받으면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유를 찾다 보니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엄마는 늘 여유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땐 이유를 듣지 못했다. 하라는 대로 해야만 했다.
안 하고 버티면 협박을 들었고 반발감이 생겨 더 하지 않았다.
급기야 화난 엄마에게 한바탕 혼난 후 울면서 하곤 했다.
나는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성마른 엄마의 재촉과 강요에 한 번도 제 속도로 살아본 적이 없다.
늘 이유도 모른 채 해야 했고 이해되지 않으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면 또 혼나야 했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곳이 되어 갔다.
이해되지 않는 세상은 멀고, 어렵게 만 느껴졌다.
그 세상의 대부분은 하기 싫은 일, 강요된 일뿐이었다.
무의식으로 가라앉은 이 경험들로 인해 일상의 자연스러운 ‘청소’마저 강요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청소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 아닌 나와 공간을 정화하는 일이다.
쓰레기를 비우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물건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청소를 한다.
청소기를 밀다 가도 화분을 정리하고, 옷을 정리하다 가도 화장실에 물을 뿌린다.
마음에서 멈추면 그만두기도 한다.
어린 시절 배려받지 못하여 경직된 마음을 함께 청소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속도와 주도권을 되찾아가고 있다.
공간이 비어야 운이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일이다.
마음이 비어야 공간도 비워진다.
혹은 공간을 비우면서 마음이 비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비워진 공간 사이로 잊고 있던 어린 날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기 이해의 소중한 순간으로 연결된다.
사실 운이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맺힌 마음들이 풀어져 제 갈 길을 가고 원래 자신의 모습과 속도로 살게 될 때 모든 것은 잘 될 수밖에 없다.
자기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갈 때, 모든 것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정화의 마음으로 하는 청소는 이런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