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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춘희 Jun 28. 2023

김 여사의 명품

아직도 사랑.

김 여사는 오늘 아침 남편 K의 생일상을 받았다.


가부장 문화의 선봉에 있는 남편 K가 김 여사의 아침 생일상을 차리고 '생일 축하한다' 말을 하기까지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한 지 39년 만에 일이다.


김 여사는 이제까지 주야장천 음력으로 찾아 먹던 생일을 기억하기 힘들다는 딸들의 조언으로 단박에 양력으로 바꾸었다. 오늘이 김 여사가 양력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이다.

 

김 여사는 생일 일주일 전 식탁 벽면에 걸린 달력에 동그리미를 치고 별 세 개를 표시했다. 이번 주간은 김 여사 자신의 생일 주간임을 틈틈이 남편 K에게 알렸다.


자신의 생일 주간에 김 여사는 꽃도 사다 나르고, 부엌에 얼씬거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맛집 완제품 요리를 주문해 나르며 저녁 식사를 메꾼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지루한 김 여사 자신의 존재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호구지책이었는데  김 여사의 호들갑만 집안을 떠들썩였다. 남편 K는 김 여사 생일에 ’ 밥 묵자‘ 한마디로 저녁밥 한 끼 외식으로 끝내는 게 고작이었다.  

  

주방 쪽에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못 들은 척 김 여사는 침대에서 뒤척였다. 은퇴 후 김 여사는 야밤에 활동하는 부엉이가 되었다. 30년 넘게 새벽 출근으로 씩씩한던  몸은 원래 부엉이과 였다.


미역국 냄새가 방으로 날라 들었다. 싱크대가 낮아 허리가 아프겠군! 앞치마는 입었을까? 김 여사는 남편 K가 안쓰러워지려는 마음을 다 잡았다.


70을 바라보는 60의 끝자락에서 남편 K가 달라지는 게 감지되기는 하였다.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남편 K는 ’ 나를 따르라 ‘에서 ’ 네 의견을 참고할게 ‘ 조금 유연해졌다. 김 여사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도 종종 있다. 명령조의 말본새가 권유형, 질문형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화가 나면 지위고하, 장소 불문하고 언성 높여 소리 지르는 것은 여전하나 그 빈도가 줄어들었다.

 

 김 여사 생일 얼마 전 남편 K는 김 여사 생일에 초밥과 회를 주문해서 저녁에 집에서 먹자고 제의했다. 김 여사는 유독 회를 많이 사랑하는 남편 K가 회가 먹고 싶은가 보다 했다. 생일은 나인데 질문을 ’ 생일에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어야 마땅할 판에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들이 되는 남편 K에게 김 여사는 60이 지난 생일에 무얼 그리 의미를 둘까 보냐 싶어 오케이 했다.


 남편 K와 달리 내륙지방인 충청북도에서 성장기를 보낸 김 여사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공원 산책길에 남편 K가 또 은근히 물었다. '또 뭐 원하는 게 있어?' 그러한 남편이 새삼스러워진 김 여사는  '갑자기 왜 그래?'하고 남편 K의 팔을 툭 쳤다.


서로 상대의 생일에는 밥 사는 거로 퉁치며 지낸 지가 꽤 되었건만 갑자기 남편 K의 다정한 말투에 김 여사는 살짝 설렌 듯 당황스러웠다. ‘왜 이러지 이이가? ‘ '남자가 철이 들면 무덤 갈 때가 되었다’라는 세간에 떠도는 우스갯소리가 김 여사 머리 곁을 맴돌다 다.


남편 K는 김 여사와 달리 금전을 짜임새와 규모가 있게 사용한다. 한 번 들어온 돈은 내보내기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김 여사는 이 기회에 '명품 백을 사달라 할까?' , '현금으로 팍 달라고 할까?'  머리가 핑핑 돌다가  순간 툭하고 던져진 김 여사의 답은 '생일 하루 부엌에 안 들어가게 생일상 좀 차려 보셔'였다.


자신도 모르게 가당치 않게 툭 튀어져 나온 말을 다시 주워 담을까? 하고 남편을 보았다. 필요한 말만 하는 남편 K는 가타부타 말없이 정수리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속 알 머리 없는 머리를 보이며 앞서갔다. 주워 담기엔  늦은 거리였다.


 남편 K는 정말로 김 여사의 아침 생일상을 차렸다. 조금은 외식 불가인 코로나의 덕이기도 했다. 별거 없었지만 정갈한 생일상의 느낌은 있어 김 여사는 살짝 쌀쌀한 3월이긴 하나 꽃무늬 샬라라 봄 원피스를 차려입었다. 머리를 뒤로 틀어 올리며 샤넬 NO5도 귓불에 한 방울씩 찍었다. 샤방한 모습으로 남편 K의 거룩한 아침 생일상을 받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김 여사! ' 남편 K의 계면쩍은 듯 어색한 말이 생일 밥상 위로 튀었다. 정감 덩어리인 김 여사는 가슴이 출렁거리며 눈에 물이 고이려고 하는 걸 막느라 ‘맛있다’를 연발하며 잡채를 한입 가득 물었다. ‘잡채도 할 줄 알고....’ 김 여사의 넓은 오지랖 뇌는 ‘ 내가 먼저 죽어도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였다. 출렁거리며 고일까 말까 하던 눈에 물은 삽시간에 오그라 들었다.  


코로나로 생일을 외식으로 퉁 칠 수 없어 만들어낸 생일상이라 일회성으로 끝날 확률이 100%이다. 김 여사 가슴엔 잠깐이지만 오랜만에  따스한 바람이 일었다.


김 여사! 그녀는 자신을 지구촌에서 유일무이한 명품 같은 존재라 착각하면 산다. 어떤 옷을 입어도, 백화점 세일 때 고르고 고른 몇만 원짜리 가방을 들어도 명품인 자신이 입고 들고 나는 것들은 모두 명품이라는 오만한 존재 철학을 구가하며 살고 있다.


 명품인 자신을 무수리 취급하는 남편을 떠나볼까도 고민해 봤다. 30년 연하 아니면 가부장 문화권 밖의 더 좋은 새 남자를 만날 확률이 0%라는 현실적 벽을 뛰어넘는 것보다 남편 K와 그럭저럭 사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결론으로 오랜 세월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날도 오고 김 여사는 가슴이 뭉클, 빙그레 웃었다.   


 김 여사의 남편 K는 체계적이고 정갈하며 주위가 깔끔한 것들을 좋아한다. 오늘 아침 김 여사에게 바친 생일상도 그러했다. 쇼핑백을 절대로 들지 않는 남편 K가 메뉴를 정해 장을 보고 김 여사의 생일상을 차렸다.


김 여사는 영원히 가부장의 골수 꼰대로 생을 마감할 것 같았던 남편 K 이름 석 자에 명품 라벨을 붙인다.

(22년 3월)


~그 후~
김 여사 남편 K는 은퇴 후 평일은 일식이로, 주말 주일은 이식이로 있다. 아침식사는 부엉이과인  김 여사를 배려해 손 수 차려서 혼자 먹는다. 아침 겸 점심을 먹는 딸 1과 김 여사를 위해 예쁜 달걀 프라이 2개를 매일 아침식탁에 올려놓는다. 점심은 점찍듯이 알아서 먹는다. 그런 후 저녁식사는 김 여사의 정성이 듬뿍 담긴 요리를 기다린다.

남편 K는 김 여사가 먼저 하늘나라에 갈 것에 대비해 자신이 요리를 해서 혼자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김 여사보다 오래 살고 싶은가 보다. 혹은 김 여사를 남겨 놓고 가는 게 걱정스러운 걸까? 어쨌거나 남편 K가 일식이어서 김 여사는 고맙고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명품 라벨을 붙인 그는 명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제목 :'오붓이 나에게'. 15호. 유화                                               

  6월은 확실한 햇살과 초록빛이 과하지 않은 열정, 갈망으로 있어 참 좋다.. 내가  나와 오붓한 수다로 걷고 있는  6월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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