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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이야기

긴 생각 짧은 글

by 지유


욕먹을만했다. “저 저 오뉴월 풀떼기 같은 년, 놋젓가락 같은 년, 사탄 마귀 같은 년.” 내 말을 듣다 참다못한 엄마가 내게 퍼붓던 욕이었다. 엄마가 아프지 전까지 나는 늘 바른말을 참지 않고 해 대는 못된 딸이었다. 낡은 살림살이와 상하기 직전의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에게 화가 나서, 똑똑 끊어지는 말투와 차가운 목소리로 엄마를 몰아세우곤 했었다.


꽃구경을 갔었다. 엄마의 병을 알고 서너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꽃을 보러 떠나온 우레시노는 따사로운 봄볕 아래 벚꽃이 아이들 웃음소리처럼 흩날렸었다. “엄마는 돌아가시면 제일 하고 싶으신 게 뭐예요?” 묻는 나에게 “나? 죽으면 낙원에 가서 사방에 꽃이 가득한 들판에서 살고 싶어.” 하셨던 당신. ‘이제 꽃을 보면 곁에 없는 엄마를 떠올리겠지. 계절을 못 이겨 움트는 저 꽃봉오리처럼, 봄볕처럼 터지는 울음과 후회만이 남겠지.’ 그런 생각들이 피어올랐었다. ‘저 꽃처럼 다음 해에도 엄마를 볼 수 있을까. 이맘때면 내내 엄마가 그리울 거야.’ 마음속 깊숙이 넣어두고 못한 말들 너머로 벚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야위는 엄마의 뺨과, 복수로 불룩해진 배를 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다. 뜨끈한 열감을 느끼며 엄마의 마른 몸보다 훨씬 큰 배를 그저 쓰다듬었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엄마 손은 약손.” 그러면서 엄마가 나의 배에 그랬듯이. 제발 통증이 줄어들었으면 간절히 바라면서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바위처럼 내 목을 짓눌러서 속 시원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엄마를 위해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나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때처럼 엄마에게 다정해 본 적이 없었다. 말투도, 눈빛도, 단박에 나긋나긋 순해졌었다. 이별을 예감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정해지는 마음은, 그동안 어디 숨어있던 것일까. 엄마가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는 온순하고 따뜻하고 더할 나위 없이 착한 딸로 일 년 반을 살았다. 수저에 생선 살을 발라 올려드리며 “우리 엄마 오늘 예쁘시네.” “아이고, 밥도 잘 드시네.” 엄마의 발을 씻겨주고, 머리를 감겨 드리고, 손발에 로션을 발라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드렸었다. 그런 날들 덕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보내드릴 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무렵에 아빠와 요양병원으로 엄마 면회를 가던 길이었다. 엄마의 의식이 또렷하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하던 시기였다.

“간병인이 그러는데 엄마가 아부지랑 큰아들만 찾는대요.”

“어떤 이는 죽어서 남편이랑 같이 묻히는 게 싫다고 한다는데, 아부지는 좋으시겠어요. 엄마 기억에 아부지가 좋게 남았다는 거잖아요.”

“그러게. 네 엄마가 나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지……”

아랫집 세입자가 혼자 계신 아버지를 위해 반찬을 갖다 주었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아버지가 이웃 사람에게 덕을 많이 쌓으셨나 봐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이런 말을 나누었었다. 혼자 남게 될 아빠에게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되려나 고민했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매일 그립다가 점점 잊고 사는 나날도 생겼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슬프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엄마와 통화하고 나면 신기하게 위안이 되었다. 엄마가 안 계시자 가장 힘든 건 엄마에게 전화를 걸 수 없는 상황이다. 고요한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도, 전화기를 붙들고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손끝이 가려운 이 그리움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입 밖으로 나가면 가시가 돋치던 나의 말들이, 뭉글뭉글 순두부처럼 떠다녀도 좋으니, 엄마와 다시 통화할 수 있다면…… 그런 밤이면 한 뼘 독방에 갇힌 듯이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설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리고 슬픈 이별은 죽음으로 갈라진 사람들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엄마가 아프면서, 아버지가 혼자 남게 되면서, 이왕 다정해진 김에 쭉 다정한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뭔가 수틀리면 독설을 하긴 했었지만, 실은 나도 다정한 사람과 따뜻한 말에 끌리는 사람이니까. 마음이 담긴 다정한 말을 들으면 왠지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순해지니까. 그럼 나중에 나도 이승을 떠나 혹여 엄마를 만난다면 “저 사탄 마귀 같은 년.” 소리는 안 하시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엄마가 그리워서 그렁그렁 눈물을 머금은 채 나는 쓴다. 엄마는 유산으로 내게 눈물을 물려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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