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여행 # 1 : 쇼박(Shobak) 동굴 호텔
이번에는 어디 갔다 왔어?
요르단.
뭐? 요르단?
응.
진짜? 어떻게?
비행기 타고!
주변 지인들에게 요르단을 다녀왔다고 하니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에는 '미생' 드라마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 그 나라라고 하면 '오~ 그 나라!'하며 반기는 친구들이 몇 명 있기도 하고 올림픽 축구 예선전을 치르며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불과 두 해 전인 2014년만 해도 요르단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세계지도 어딘가에 있는 나라이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라였다. 어떤 친구는 요르단이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라 해도 믿을 정도였고, 성경에 나오는 요단강의 그 요르단이라고 하면 요단강이 진짜 있는 강이냐며 되묻기도 하는 친구도 있었다.
요르단을 갔다 왔다고 하면 의례 나오는 질문이 있었다.
배낭여행 마니아들이나 감직한 그곳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인 내가 어떻게, 왜 갔냐고. 답은 간단했다.
다른 곳에 가고 싶었다.
미국, 호주, 프랑스, 일본, 태국... 책이나 TV 덕분에 마치 갔다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곳,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곳들보다는 상상 그 이상의 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떠났다.
소싯적에는 꼼꼼한 준비와 부푼 기대를 안고 행여 뭐라도 놓친 건 아닌지 며칠 동안 챙기고 또 챙겨 들고 배낭여행을 떠났지만, 어느덧 일상에 찌든 직장인이 되고 보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날에야비로소 부랴부랴 배낭 챙겨 들고 뭔가 찜찜한 기운 속에 공항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야 온몸의 근육이 풀리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요르단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요르단의 '요' 자도 모르면서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야 드디어 여행을 떠난다며 좋아라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여행 책자를 건넸다. 이런... 론리플래닛 영어 버전이다. 친구는 한글 번역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영어 버전을 샀다고 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라! 엎치락뒤치락 책장을 무심코 넘기기를 몇 번 하다 보니 조금씩 영어가 보였다. 이때 우연히 들어온 단어가 있었다.
... a cave hotel...
뭣이라? cave? 그럼, 동굴 호텔? 동굴 호텔 이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었다. 요르단의 작은 도시인 쇼박(Shobak)에 있는 동굴 호텔이었다. 마치 이 동굴 호텔을 가기 위해 요르단에 가는 것처럼 동굴 호텔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친구도, 나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페트라'도,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의 배경인 사막 '와디럼'도, 사람이 둥둥 떠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소금 농도가 높다는 '사해'도, 석유가 나는 땅과 바꾼 홍해의 '아카바'도 후순위로 밀려났다. 요르단 여행의 1순위는 쇼박(Shobak) 동굴 호텔이 차지했다.
인천 공항에서 필리핀 마닐라를 거쳐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를 거쳐 드디어 암만 국제공항에 도착한 순간, 친구와 나는 이미 여행을 다 마친 것처럼 녹초가 되어 있었다. 1순위로 꼽았던 쇼박(Shobak) 동굴 호텔에 대한 환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 황량한 공항을 벗어날 일이 걱정이었다.
그제야 우리가 맨땅에 헤딩하듯 요르단에 발을 디딘 것을 깨달았다.
준비라고는 고작 여행 책자에서 본 암만 시내에 있는 저렴한 호텔을 찜 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 암만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다행히 방은 있었고, 시설도 훌륭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친구가 호텔 로비를 몇 번 오가더니 자동차를 렌트했다고 했다. 이곳은 대중교통이 안 좋으니 자동차를 렌트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다. 차를 렌트하는 것이 훨씬 좋기야 하겠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잘 알지도 못하는 요르단 아닌가, 여기서 어떻게 운전을 하며 다닌단 말인가! 여행 책자에서 동굴 호텔을 찾은 것보다 더욱 놀랬다. 친구 왈, 내비게이션까지 같이 빌렸으니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했다. 영어로도 나오는 좋은 내비게이션이라서 빌리는데 좀 더 비쌌다고 했다. 역시, 내 소중한 베스트 프렌드, 자랑스러운 베스트 프렌드!
룰루랄라~ 쇼박(Shobak) 동굴 호텔을 향에 차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착실하게 차를 움직였는데, 뭔가 이상했다. 시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곳을 돌고 있었다.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는 내비게이션이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내비게이션은 다시 박스에 들어갔고 몇 번 의자에서 떨어진 뒤에는 결국 어두운 트렁크에 던져졌다. 결국 디지털 문명의 이기는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고 깨알보다 더 작은 글자와 표지들이 박혀있는 여행 책자의 지도를 펼쳐 들고 아날로그식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우여곡절. 말 그대로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끝에 쇼박(Shobak)에 도착했다. 어둑어둑하던 기운이 뚝 떨어지더니 곧 캄캄해졌다. 말이 도시이지 소박한 작은 시골마을 쇼박(Shobak)이었다. 상상 속에 그려보았던 운치 있는 아담한 동굴 호텔이 있음직한 곳이 아니었다. 혹시나 'cave'가 그냥 호텔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은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 호텔의 위치를 물었다. 가게 점원인 젊은 청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곳은 찾아가기 쉽지 않다며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손사래를 치며 우리에게 차가 있으니 길만 알려주면 우리가 찾아가겠다고 했다. 청년은 그 호텔이 친구네 집이라며 꼭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호텔이 친구네 집이라고? 뭔가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엄청 부자인가? 그나저나 호텔이 집이라니?
우리가 청년의 영어를 못 알아들었나?
청년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들더니 가게 앞에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에 오르며 따라오라고 했다. 황당했다. 배낭여행에서 고마운 것도 친절이지만 위험한 것도 친절이다. 과유불급. 적당해야 할 터인데 이 청년들의 친절은 과해 보였다.
그런데 이 청년의 친절을 마다하고 호텔을 찾아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상한 곳으로 간다 싶으면 바로 차를 돌릴 요량으로 우리들도 차에 올라 청년이 탄 차를 따라갔다. 앞 차의 불빛만 보이는 검을 길을 따라 조심조심 운전을 하며 나아갔다.
언덕을 올라가니 환한 불빛이 보였다.
청년이 운전해가던 차가 작은 마당에 멈추었다. 우리 차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청년이 내렸다. 뭐야? 여긴 호텔이 아니잖아!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고 우리는 즉시 차를 돌리려 했다. 그때 큰 바위에 붙어 있는 문으로 누군가 나왔고 청년과 밝게 인사를 나누었다. 청년은 우리에게 다가와 창문을 두드리며 여기가 호텔이라며 내리라고 했다. 우리는 꼼짝 않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뒤이어 흰 바탕에 붉은 패턴이 있는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검은 링을 눌러쓴 아저씨가 우리 차에 다가왔다.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우리를 대환영한다는 뜻으로 보였다. 우리가 환영을 거절한다면 아저씨가 매우 실망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이곳이 정말 동굴 호텔이 맞는지 긴가민가 하며 차에서 내렸고, 청년은 아저씨에게 인사를 한 뒤에 차를 몰고 다시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청년에게 여기까지 데려다 주어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어리둥절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빛이 우리에게 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동굴 호텔입니다.'
연극 무대 같은 이 호텔을 본 순간 안도의 한숨에 이어 허탈한 웃음이 나오더니 숙소 안을 보고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상상 그 이상이었다.
번듯한 간판 하나 없는 동굴 호텔은 다름 아닌 천연 동굴에 마련한 숙소였다. 입구로 들어간 곳은 정직한 동굴 안이었고 로비이자 식당이자 기념품 가게였다.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해준 청년의 친구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기도 했다.
암만에서부터 이곳까지 찾아오느라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우리들은 늦었지만 식사가 되냐고 가장 먼저 물었다. 늦게 찾아온 손님들을 보고 들뜬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아들이 통역을 해주었고 주인아저씨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짧은 영어로 오케이를 연발하셨다.
대체 누가 어떤 음식을 만들까? 궁금하였다. 당연히 어디선가 여자분이 나와서 요리를 할 것이라는 우리들의 예상을 깨고 아들이 두 팔을 걷어 올리더니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뚝딱뚝딱 뭔가를 만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럴싸한 식탁이 차려졌다.
사진의 가장 위쪽 접시에 담긴 붉은 것은 생 토마토, 오른쪽 방향으로 펠라펠(콩을 으깨어 약간 매콤하게 양념을 한 반죽을 동그랗게 튀긴 음식), 자작하게 졸인 토마토 야채 소스, 올리브 초절임, 계란 프라이, 후무스(콩을 갈아 마늘과 레몬으로 양념을 한 소스)이고, 가운데 놓인 동그란 것은 낱개 포장이 된 치즈다. 여기에 따뜻하게 구운 피타(얇고 넙적한 빵)가 곁들여졌는데 피타를 조금씩 뜯어 각자 입맛에 맞게 재료들을 얹어서 먹었다. 밤늦게 먹어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건강한 저녁 식사였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바로는 호텔 주인아저씨의 집은 아래 마을에 있으며 부인도 있고, 딸도 있고, 손녀까지 3대가 함께 사는 다복한 집안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자기네 가족이 베두인족이라는 점을 매번 강조하셨는데 내가 평생에 걸쳐 듣게 될 '베두인'이란 단어를 이 곳에서 다 들은 것 같았다.
요리를 부인이나 딸이 하지 않느냐고 궁금해했더니 이 곳은 엄연히 주인아저씨의 사업장이며 모든 바깥일은 남자들의 몫이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들이 묵을 방을 찾아갈 차례였다. 주인아저씨의 아들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훤칠한 용모가 돋보이는 주인아저씨의 아들은 이 호텔의 지배인이자 요리사이자 벨보이인 셈이었다.
대체 동굴 호텔의 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기대 반 호기심 반을 안고 주인아저씨의 아들을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 계단을 올라 다른 문으로 들어가니 또 다른 동굴이 나왔다. 벨보이가 된 주인아저씨 아들은 그곳이 우리가 묵을 방이라고 했다.
동굴 호텔이라기보다는 동굴 체험 장소라고 부르고 싶었다. 동굴 안에 카펫이 깔려 있고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국이었다. 혹시 시멘트로 만든 인공 동굴이 아닐까 살짝 의심했으나 벽을 만졌을 때 깊이 박힌 천연의 모래알이 사각사각 느껴지는 걸 보니 어김없는 천연 동굴이었다.
나름 급속 온수기까지 갖춘 욕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었으나 전체 난방 시설이 전혀 없었다. 창문도 당연히 없었으니 찬바람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때는 1월, 황량한 사막의 밤기운이 뻗어있는 곳이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온갖 옷을 껴입고 마스크와 안대로 얼굴을 다 덮고 침대에 누웠다.
놀라웠다.
동굴이 품고 있는 막힌 공기 속에서 답답함보다는 자연의 힘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불을 끄니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동굴 안이었지만 마치 반짝이는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검은 천체 속에서 잠드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각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였다. 잠도 설치지 않고 감기에도 걸리지 않은 걸 보니 성공적인 동굴 체험이었다. 문제는 추운 날씨 때문에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씻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부스스한 몰골로 밖으로 나오니 청정한 아침 공기가 온몸으로 싸하게 느껴졌다.
눈 앞에는 거칠고 소박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 칠을 입히고 낙타와 주전자 그림으로 장식을 한 자동차가 나름 인테리어 소품으로 호텔 앞마당을 장식하고 있었다. 자동차 뒤로 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구조물이 쇼박성(Shobak Castle)이었다.
호텔 앞마당을 거닐며 거친 흙바닥에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신발에서 일어나는 작은 마찰 소리마저 또렷하게 울리는 고요한 아침이었다.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동굴 호텔의 아침을 고요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숨소리마저 죽이며 눈 앞에 보이는 쇼박성(Shobak Castle)을 향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쇼박성(Shobak Castle)은 노쇠한 모습으로 오롯이 앉아 있었다.
아침 햇살을 가득 안기 시작한 성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성을 지키는 문지기 아저씨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문지기 아저씨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손님에 놀라워하면서도 능숙하게 성의 구석진 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12세기 초에 십자군이 세웠던 이 성은 많은 부분이 무너져 있었지만 이슬람 군에 맞서 기독교를 지키려 했던 의지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성을 찬찬히 다 둘러본 후에 문지기 아저씨는 자신이 묵는 곳에 우리를 초대해주셨는데 차도 내어주고 악기를 켜며 노래까지 들려주셨다. 손 때가 묻은 악기를 타고 나오는 이국적인 선율과 세월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는 문지기 아저씨의 노랫가락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치 시간이 정지된 이 공간의 일부가 된 느낌이 들었다.
성을 오려고 보니 한편에 마련된 기념품 코너가 보였다. 외지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외딴곳이지만 나름 관광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기념품이라 하여 공장에서 붕어빵을 만들 듯 찍어낸 공산품이나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멋들어진 수제품이 아니었다. 그저 이 곳에서 발견한 화석이나 특이해 보이는 돌멩이 들이었다. 수백 년 전 이 성에 생활한 사람들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쇠붙이들도 눈에 띄었는데 작은 기념품 코너의 판매대에서도 쇼박성(Shobak Castle)의 소박함이 고스란히 베어나왔다.
동굴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베두인족은 동굴에서 화석을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얼른 화석을 몇 개 구입했다. 베두인족이 간직했던 행운의 기운이 나에게도 오기를 바라며 화석을 손에 꼭 쥐고 쇼박성(Shobak Castle)을 내려왔다.
쇼박성(Shobak Castle)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시장기가 돌았다.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 좋겠다 싶어 한국에서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호텔 주인아저씨에게 아침 식사로 우리가 한국식 라면을 직접 끓여서 대접하겠다고 하니 극구 말리며 아들에게 라면봉지를 건네며 빨리 아침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주인아저씨의 아들에게 온갖 손동작을 동원하고 라면 봉지 뒷면에 있는 그림까지 보여주며 라면 끓이는 법을 설명하며 라면 봉지를 건넸다. 곧 매콤한 국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며 쫄깃한 라면을 먹으리라 기대를 하며 식탁에 둘러앉아 주인아저씨와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 후 우리의 잘 생긴 청년 아들이 준비한 식탁을 본 순간 간밤에 이 곳 동굴 호텔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국물은 온데간데없고 라면 국물에 삶은 면만 접시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아침을 준비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혹시 라면 국물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그제야 청년 아들은 차를 내놓듯 컵에다가 라면 국물을 따로 내어왔다. 이것이 베두인족의 라면 요리법인가 생각하며 라면 한 젓가락에 귀한 차를 마시 듯 라면 국물 한 모금을 마셨다.
물 한 방울이 귀한 사막의 땅에서 어찌 국물 요리가 발달했으랴! 갑자기 우리네 시골길 따라 흐르는 시냇물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왔고 일상으로 먹는 보글보글 국물이 넘쳐나는 요리들이 그리웠다.
국물 따로 면 따로 준비한 특이한 라면을 주인아저씨네와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아침을 마무리하고 나니 이번에는 주인아저씨께서 라면에 보답하겠다며 쇼박(Shobak)에서 가장 멋진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든든히 배를 채운 우리들은 지난밤에 이곳을 찾았을 때와는 달리 아저씨의 친절을, 아니 배두인의 친절을 단번에 감사히 받아들였다.
주인아저씨와 함께 차를 타고 쇼박(Shobak)의 전망대를 찾았다.
여행 책자가 채 소개해주지 못한 쇼박(Shobak)의 광활한 절경을 본 순간, 왠지 모를 성스러움까지 느껴졌다. 주인아저씨는 멀리 펼쳐져 있는 거친 황야를 보여주며 베두인족이 갖고 있는 강인함에 대한 설명을 놓치지 않았다. Strong Bedouin, Powerful Bedouin!
주인아저씨의 울림이 강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혹시나 내가 전생에 베두인과 인연이 있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베두인족의 자부심을 강하게 전달되었다.
동굴 호텔로 다시 돌아오니 짧은 하룻밤이었지만 어느새 동굴 호텔이 포근하게 다가오며 이제 떠나야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북부 유럽 어디쯤엔가 있음직한 화려하고 안락한 고급 동굴 호텔은 아니었지만 쇼박(Shobak)의 동굴 호텔만이 줄 수 있는 인간다움과 특별함을 매김 한다면 금빛으로 치장한 두바이의 7성급 호텔에도 가히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아저씨에게 한국에서 들고 온 작은 기념품을 드리면서 감사의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전하고는, 우리들은 동굴 텔 앞에 세워 둔 차에 다시 올라 뱃고동 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항해를 시작하는 배처럼 상상 그 이상의 여행을 꿈꾸며 아날로그식 배낭여행에 새로운 시동을 걸었다.
우리 차가 사라지기 전까지
아니, 우리 차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도
한참을 지켜보고 계실 주인아저씨!
꼭 다시 뵐 수 있기를
주머니에 고이 간직한 베두인의 화석 하나에 빌어봅니다.
요르단 쇼박(Shobak)에서
행복여행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