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여행 May 07. 2016

공기마저 정지되어 버리는 공간

요르단 여행기 #3 : 붉은 사막 와디럼 (Wadi Rum)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타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 노래 '목로주점' 중에서 -

낙타를 타고 가는  모래사막에 가고 싶었다. 


와디럼의 붉은 모래 ⓒ 행복여행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모래알들이 스르르 날아가버리는  모래사막 위를 걸으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지, 모래사막에서 부는 바람은 얼마나 거친지, 모래사막의 사구는 하룻밤에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지, 모래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어떤지... 이런 궁금증들을 언젠가는 꼭 풀고 싶었다.   


요르단에 그런 사막이 있다고 했다. 


붉은 사막 와디럼(Wadi Rum)이었다. 여행 책자에서 와디럼(Wadi Rum)이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라는 설명을 읽고 무척 반가웠다. 


오래전에 본 영화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빛나던 주인공(피터 오툴)의 푸른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온 세상을 태울 듯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모래 먼지를 휘날리며 낙타를 타고 달려가는 베두인들의 모습도 매우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 중 하나였는데, 그 영화의 배경이 와디럼(Wadi Rum)이었고, 와디럼(Wadi Rum)이 이 곳 요르단에 있었다. 중동의 작은 나라, 요르단의 매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요르단을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품고 싶었다.  


와디럼(Wadi Rum)에 도착하면 영화 속에서 본 것처럼 낙타가 즐비하게 줄을 서 있을 줄 알았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닐면 얼마나 운치 있을까?' 이런 기대를 하며 와디럼에 도착하였지만  우리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지프차들이었다.  


와디럼 투어 출발지에서 보이는 지혜의 일곱기둥 ⓒ 행복여행


물론 낙타 투어도 있기는 했지만 낙타 타기 체험 수준이었다. 반나절 투어로 와디럼(Wadi Rum)을 둘러보기 위해 지프차 투어를 선택했다. 


와디럼의 낙타들 ⓒ 행복여행


우리들의 사막 투어를 위한 지프차와 가이드가 정해졌고 차 뒤에 준비된 자리에 우리가 앉자마자 지프차는 사막을 향해 달려갔다. 


사막 투어를 출발하기 전에 의자 쿠션을 놓는 가이드 ⓒ 행복여행


와디럼(Wadi Rum)은 아랍어로는 '높은 계곡'이란 뜻이고 '달의 계곡(The Valley of The Moon)'으로도 알려져 있다. 우뚝 솟은 바위산들과  모래사막이 어우러져 있는 특이한 절경이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와디럼 사막 투어 ⓒ 행복여행 


우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로렌스의 우물(Lawrence Spring)이었다. 


와디럼은 '로렌스의 사막'이라고 할 정도로 영국의 역사학자이나 군인이었던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의 흔적을 곳곳에 찾을 수 있었다. 


로렌스는 1차 세계 대전 때 아랍의 독립을 위해 베두인족으로 구성된 게릴라 부대를 이끌었는데 이 경험을 기록한 책이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이며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와디럼의 로렌스 우물(Lawrence Spring) 전경 ⓒ 행복여행
와디럼의 로렌스 우물(Lawrence Spring) 전경 ⓒ 행복여행


로렌스의 우물(Lawrence Spring)에 도착하니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떠 올랐다. 


로렌스가 이끌고 있던 현지인 부대의 한 군인이 사막을 걷다 우물을 보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우물의 주인이 어디선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자신의 우물의 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칼을 뽑아 그 군인을 가차 없이 죽였다. 로렌스는 이 사건을 겪고는 깊은 고뇌에 빠졌고 인간의 탐욕에 분노하였지만 사막에서 물은 생명이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물의 주인을 탓할 수만은 없는 비정한 현실에 굴복해야 했다. 


메마른 사막의 땅에 두 발을 딛고 보니, 사막은 아름다운 침묵의 땅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처절하게 버텨내야 하는 극한의 땅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붉은 모래 언덕, 사구(Sand Dunes)에 발자국을 남기다. 


드디어 상상 속에 그려보던  모래사막에 도착하였다. 붉은 기운을 내뿜는 모래알들이 한 알 한 알 모여 거대한 붉은 모래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와디럼의 붉은 모래 언덕 ⓒ 행복여행 
와디럼의 붉은 모래 언덕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여행객 ⓒ 행복여행


저 곳을 오르거나 내려오려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래 때문에 데구루루 굴러버릴 것 같았지만 모래는 전혀  미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발을 디딜 때마다 모래알들이 내 발걸음들을 야무지게 잡아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석양빛처럼 붉게 타오르는 모래 언덕에 앉아 곱디고운 모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에 남아있는 옅은 모래 결이 점점 뚜렷이 보였다. 


물 한 방울 머금지 못하여 생명을 품지 못하는 모래가 동쪽 끝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 멀리서 찾아와 주어 고맙다며 슬픈 듯 기쁜 듯 알 수  없는 모나리자 미소 같은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와디럼의 붉은 모래 언덕 ⓒ 행복여행


이런 모래의 미소에 답을 하듯 내 손의 온기를 사막의 모래에 전해보았다. 


와디럼의 붉은 모래 언덕 ⓒ 행복여행

 

선사시대의 기록, 안파시예 암각화 (Anfashieh Inscription)


와디럼(Wadi Rum)은 거대한 노천 박물관과 같은 곳이었다. 박물관 투어를 하듯 '모래 언덕'의 코너를 지나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바위산' 코너를 찾았다. 


넓은 바위에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펼쳐져 있었는데 주변에 어떤 보호망도 쳐져있지 않았고 손 끝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객이 찾아와서 망가뜨렸다는 눈총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손을 뻗고 있으려니 가이드는 훌쩍 올라 암각화에 몸을 기대어 사진을 찍는 포즈까지 취했다. 


와디럼의 안파시예 암각화 위에서 포즈를 취하는 가이드 ⓒ 행복여행


마음껏 암각화 앞을 오가는 가이드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보호망으로 설치하는 구조물들이 

오히려 암각화를 훼손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인공적인 손길을 대지 않고 와디럼을 가만히 놓아두는 것이 와디럼(Wadi Rum)을 가장 와디럼답게 지키는 것일 게다.  그렇게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 이것이 와디럼(Wadi Rum)의 가장 큰 매력으로 남을게다.  

와디럼의 안파시예 암각화 ⓒ 행복여행


베두인의 깊은 차 향기가 퍼져 있는 로렌스의 집(The House of Lawrence) 


다음 목적지는 무너진 벽돌의 흔적이 남아 있는 로렌스의 집(The House of Lawrence)이었다. 


로렌스의 집(The House of Lawrence) 앞  ⓒ 행복여행


우람한 바위산 앞에는 우리나라 오두막을 연상케 하는 천막 텐트가 아담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각기 다른 지프를 타고 있던 관광객들이 다 같이 모여 베두인의 따뜻한 차를 함께 마셨다. 강렬한 햇살과 모래 바람으로 점점 말라가던  몸속에 차 향이 퍼져들자 비로소 사막의 여유가 느껴졌다. 거친 고뇌에 빠져있던 로렌스도 이 차를 마시며 상처받은 인간다움을 촉촉하게 달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로렌스의 집(The House of Lawrence) 인근에 있는 텐트  ⓒ 행복여행


와디럼(Wadi Rum)의 다리를 건너다.  


와디럼(Wadi Rum) 곳곳에서 거대한 사암 바위들이 엮어내는 놀라운 형상들을 볼 수 있었는데, 움 프로쓰 바위 다리(Um FrouthRock Bridge)는 뚝뚝 끊긴 엿가락들을 턱 하니 허공에 세워  올려놓은 것 같았고 작은 다리(Little Bridge)는 용암이 흘러내리며 묘하게 공간이 생겨 두 손이 맞닿은 모습이었다. '신비롭다'는 표현 외에는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와디럼의 움 프로쓰 바위 다리 (Um Frouth Rock Bridge) ⓒ 행복여행
와디럼의 작은 다리 (Little Bridge) ⓒ 행복여행


오아시스의 막이 열리다.  


우리가 탄 지프차에 다시 시동이 걸리자 깊게 파인 바퀴 자국이 우리를 와디럼(Wadi Rum)의 새로운 무대로 초대했다. 마치 연극의 막이 내려지자 무대의 세트가 바삐 움직이며 새로운 무대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와디럼 ⓒ 행복여행
와디럼 ⓒ 행복여행


캠핑 투어를 할 경우 사막의 밤을 보내는 캠핑장을 지나


와디럼의 캠핑장 ⓒ 행복여행


초록색이 제법 자리를 잡고 있는 카잘리 캐년 (Khazali Canyon)에 도착했다. 


카잘리 캐년 (Khazali Canyon) ⓒ 행복여행


바위산의 틈으로 들어가니 습기 찬 공기가 흘렀고 바닥에 물웅덩이까지 보였다.  


낙타의 다리를 빌어 짐을 옮기고 사막을 건너던 아라비아 상인들은 때론 타는 목마름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지기도 했을 것이다. 초목과 나무가 자라는 이곳을 보며 신기루를 본 게 아닐까 눈을 비비기도 했을 것이고, 웅덩이의 물을 마시고 나서는 신의 가호에 감사하고 신의 축복을 노래했을 것이다. 



카잘리 캐년(Khazali Canyon) ⓒ 행복여행


카잘리 캐년(Khazali Canyon)을  빠져나와 또 다른 천막 텐트를 찾았다. 아랍풍의 스카프나 장식품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와디럼(Wadi Rum)에서 발견된 화석들이 판매대에 즐비했다. 조개 모양과 해초 모양의 화석들을 보니 몇 억년 전에는 이 곳이 바다였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떠올랐다.  



기념품을 파는 텐트 ⓒ 행복여행
기념품을 고르는 할아버지와 손녀 ⓒ 행복여행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와디럼의 화석들 ⓒ 행복여행
바다 속 해초처럼 보이는 와디럼의 화석 ⓒ 행복여행


화석들을 보고 있으니 와디럼(Wadi Rum)에서 오늘 새겨진 작은 흔적들 또한 곧 화석으로 굳어질 것 같았다. 시간도 멈추고, 공기마저 정지되어버려 모든 것이 화석으로 남는 상상을 해보았다.  


와디럼의 모래 바닥에 찍혀 있는 새 발자국 ⓒ 행복여행


수 만년, 수 억년 후에 오늘 찍힌 작은 새 발자국이 화석으로 살아나 이곳에 한때는 작은 새가 살았다고 이야기해 줄 것 같았다.   


사막의 일몰을 지켜보다.


드디어 '와디럼(Wadi Rum)'이라는 연극의 대미를 장식할 차례가 왔다. 거대한 장막이 늘어뜨린 것 같은 바위산 아래에 모였다. 사막의 흰 달이 뜨고 연극의 마지막 장인 '일몰'의 장이 열렸다. 


와디럼의 일몰 전망지(Sunset Place) ⓒ 행복여행
와디럼의 일몰 전망지(Sunset Place)에 뜬 달 ⓒ 행복여행
와디럼의 일몰 전망지(Sunset Place) ⓒ 행복여행
와디럼의 일몰 전망지(Sunset Place) ⓒ 행복여행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낯선 풍경에 숨이 멎을 듯했다. 작은 숨소리마저 큰 울림이 되어 퍼져 나가 일몰을 방해하는 것 같아 감탄하는 목소리는 낼 엄두도 못 내었다. 요지부동의 자세로 멈추어 선 채 이곳이 우주에 있는 어느 곳이라 해도 믿을 만하다는 생각만을 연발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놀라움과 신비함을 전해준 와디럼(Wadi Rum)을 어찌 잊을까? 여행을 다녀온 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영화 '마션'(2015)을 보며 단번에 알아보았다. 영화에서 화성으로 나온 그곳이  바로 내가  다녀온 와디럼(Wadi Rum)이라고. 를 보는 내내 와디럼(Wadi Rum)에서 보낸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내가  다녀온 곳이 화성이었다는 착각에 빠져보기도 하였다.  


와디럼의 일몰 ⓒ 행복여행


이 곳은 어디인가? 

태초의 생명이 움텄던  그곳이리라. 

우주의 힘을 안고 있는 와디럼이여, 

변함없이 그 땅에 우뚝 서 있기를 바랍니다. 


요르단 와디럼에서  

행복여행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신의 손길이 닿은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