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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하나 봤을 뿐인데, 왜 배달앱을 켰을까?

마라탕으로 알아보는 디지털 생태계

by Beta Lee

생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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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당신은 빈자리에 앉아 무심코 스마트폰을 꺼내 유튜브에 접속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마라탕 먹방을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화면 속 빨갛게 반짝이는 국물과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먹는 소리에 당신은 어느새 배가 고파졌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근처 마라탕 가게를 찾아보고, 배달의민족 앱으로 배달 가능한 집을 찾아본다.



콘텐츠와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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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와 서비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콘텐츠와 서비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마치 숨을 쉴 때마다 공기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콘텐츠와 서비스는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의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 그렇다면 콘텐츠와 서비스는 무엇이며, 우리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 것일까? 이제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며 그 공기를 의식해 보자.



콘텐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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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란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를 의미한다. 정보를 담는 콘텐츠라는 그릇의 형태는 다양하여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 여러 유형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콘텐츠가 담는 정보 또한 다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정보란 단순히 지식이나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경험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콘텐츠에서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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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콘텐츠의 핵심 요소로, 콘텐츠의 가치를 결정한다. 논문에서는 논리적인 분석과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논문으로서의 가치를 결정하고, 뉴스에서는 새로우면서도 정확한 정보가 뉴스로서의 가치를 결정한다. 만약 당신이 먹는 마라탕이 콘텐츠라면, 칼칼하면서도 땅콩소스의 고소함이 느껴지는 국물의 맛이 정보가 되고 그 풍미의 정도가 마라탕의 가치를 결정할 것이다.

물론, 마라탕 자체는 음식이므로 일반적으로 콘텐츠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마라탕은 먹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고, 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마라탕은 먹으면 사라지기 때문에 맛을 기록된 정보라고 보기 어려우며, 직접 먹어야만 전달이 되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당신이 마라탕 국물의 맛에서 맛본 땅콩소스의 고소함을 다른 이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이 그날 일기장에 ‘오늘 먹은 마라탕에는 땅콩소스의 고소함이 느껴진다.’라고 작성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텍스트의 형식으로 기록된 것으로, 미래의 당신이나 당신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누군가에게 공유가 가능하다.



콘텐츠에서의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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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만약 당신이 일기장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날 맛있는 마라탕을 먹은 사실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오늘 먹은 마라탕에는 땅콩소스의 고소함이 느껴진다.’라는 문구만으로는 조금 아쉬울 수 있다. 왜냐하면 단순한 기록은 무미건조하며 감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적힌 마라탕의 맛은 마라탕 레시피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당신에게 호기심이 있는 사람에게 지적 만족을 채워줄 수는 있지만, 혀에 직접적으로 땅콩소스의 맛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사람들이 아닌 다수가 당신의 일기장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자극’이 필요하다.

자극을 주는 방법은 다양하다. 단순히 일기장의 글을 생생한 묘사를 통해 감각적으로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마라탕을 먹을 때 사진이나 영상을 찍었다면 마라탕의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 담긴 이미지나 입으로 흡입하는 사운드 같은 것들을 통해 사람들이 당신의 경험에 좀 더 몰입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자극을 효과적으로 줄 수 있는 콘텐츠의 중 하나가 바로 ‘동영상’이다. 어쩌면 유튜브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이 된 요인 중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을지 모른다.



서비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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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서비스란 무엇인가?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음식을 제공하는 음식점, 돈을 관리해 주는 은행, 건강 관리를 받을 수 있는 병원, 이동을 지원하는 대중교통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소프트웨어, 웹사이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디지털 형태의 서비스도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디지털 형태의 서비스는 단순히 디지털 형태로만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의 서비스와 상호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배달 앱으로 마라탕을 주문하면 배달 기사가 배달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서비스에서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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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은 서비스의 핵심 요소로, 서비스의 목적은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서비스는 본래의 목적에 맞는 기능이 제공되어야 한다. 가령 마라탕을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의사가 나타나 위에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라는 진단을 내린다면 당신은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서비스에서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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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목적에 맞는 기능이 제공된다고 해도 기능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타난 개념이 바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다.

UX는 사용자가 서비스를 사용할 때의 경험을 일컫는 개념으로, 주로 웹이나 앱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자주 쓰이지만 일상에서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맛있는 마라탕을 제공했더라도 직원의 태도가 불친절하다면, 또는 매장이 청결하지 않다면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UX 설계를 최적화해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이 마냥 능사는 아니다. 긍정적 경험은 고객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브랜드의 가치를 향상시키지만, 마케팅 전략에 의한 부정적 경험으로도 고객의 행동을 유도하고 서비스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맵부심이 있는 당신이 음식점의 메뉴판에서 다음과 같은 도전 메뉴를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지옥 마라탕. 10분 안에 먹을 시 무료’. 당신은 도전 의식을 느꼈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그 메뉴를 시켰다. 그러나 한입을 먹은 순간, 혀가 타오르고 위장이 녹아내리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당연히 10분은커녕 마라탕을 다 먹지도 못한 채, 쿨피스만 잔뜩 마시고 음식점을 나오게 된다. 그 경험은 부정적 경험일 수 있으며, 당신은 이제 그 음식점을 다신 안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까? 도전 의식이 강한 사람은 다음에 또 같은 메뉴를 시켜서 도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경험을 타인에게 공유하여 맵부심이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음식점에 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만약 맵부심을 이용한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음식점은 수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얼핏보면 UX의 방식과 비슷한데, 실제 현업에서도 영역을 분리하지 않거나 협업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UX와 마케팅은 추구하는 목적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UX가 사용자의 편의와 만족에 초점을 맞춘다면, 마케팅은 사용자의 관심과 구매 행동 유도에 초점을 맞춘다.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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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콘텐츠와 서비스에서 자극과 경험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두 요소가 정말 의미 있는 근본적이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소비자가 소비 활동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몰입하기 힘들다면,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면 소비자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 때문에 생산자는 소비자를 선택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콘텐츠는 정보를 명확히 전달하면서도 자극을 활용해 몰입도를 높여야 하고, 서비스는 기능에 충실히 하면서도 사용자의 경험을 기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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