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랑] 언니와 외국어

20년 동안 몰랐던

by 봄꽃달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오빠가 있으면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데, 나는 언니와 9살 차이가 났음에도 의지는커녕 불만만 가득했다. 어릴 적 나는 언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언니가 대학시절, 전공공부보다 외국어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대학시절부터 언니는 외국어에 관심을 많이 가졌었다. 일본어를 혼자 공부하더니 어느덧 기초 수준의 회화를 익혀, 일본인 홈스테이까지 했고,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일본여행을 다녀오거나, 각종 일본어 자격증도 따곤 했다.

언니의 외국어 사랑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을 병행해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언니가 외국과 관련된 직장을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언니가 쓸데없이 외국어에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탐탁지 않았다. 나였다면 전공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내 커리어를 쌓아 올렸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언니를 향한 불만 가득한 마음은 10대 내내 이어졌다.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언니가 겪었던 장녀로서의 무게감이라던가 다른 면모를 알게 되며 불만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니가 어릴 적 자신의 커리어와 관련 없는 외국어를 왜 계속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덧 예전의 언니 나이가 된 나는, 언니와 다르게 내 직장과 커리어에 연관된 것에만 돈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와 밥을 먹고 있는데 TV에서 일본인 유학생 브이로그가 지나갔다. '일본 유학생의 좌충우돌 브이로그!'라는 내용이었는데, 내용이 재미있어 엄마와 나는 깔깔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을 때쯤, 엄마가 말했다.


"우리 정현(가명) 이도 그때 유학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뜬금없는 엄마의 소리에 놀라 되물었다.


"언니가 유학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럼~많이 가고 싶어 했지. 일본이 대학원으로 또 유명하니까, 일본으로 유학 가고 싶어 했어. 오죽했으면 유학 가려고 혼자 공부해서 일본어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땃겠어. 그때 일본 유학 갈 수 있는 점수도 됐었는데."


언니가 대학시절 일본어를 공부한 건 알았지만, 유학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놀라웠다.


"근데 왜 안 갔어요?"


"글쎄... 다 준비했는데 갑자기 '관심이 없어졌다'고 안 간다더라고."


엄마의 대답에, 나는 또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준비를 다 해놓고 왜 일본유학을 가지 않았는지. 요즘 시대에 외국에 유학을 다녀온 건 정말 큰 자산이다. 언니도 큰 자산을 키웠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런 기회를 포기해버렸는지. 나도 모르게 언니에 대한 불만이 다시 솟아올랐다. 엄마는 그릇을 마저 비우며 말씀하셨다.


"나도 정현이의 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그때 스스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 지금이야 너네가 다 커서 적당히 먹고살지만, 그때는 여유가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어린 동생이 둘이나 있으니... 동생들은 학원도 가야 하는데, 자신이 유학까지 가게 되면 집안이 어떻게 될지 고민했겠지. 유학 장학금 지원이 잘 안 된 모양이더라고."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언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 흔한 일본어 학원도, 영어 학원도 가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며 쌓아왔던 수많은 자격증들. 그리고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펼치기 위해 유학의 꿈을 키웠던 언니. 하지만 모든 걸 다 준비해 놓고 끝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 자신의 꿈 보다 한발 앞에 있었던 건 자신을 불만 가득한 시선으로 보는 동생이었음에도 '관심이 없어졌다'며 묵묵히 뒤돌아 섰어야 했던...


어린 시선에서만 바라본 탐탁지 않았던 언니는, 아직도 유학에 대해 물으면 '진짜 그땐 갑자기 관심이 없어져서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여전히 외국어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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