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최근 한 기사를 보고 다시금 좌절했다. 성추행 혐의 고소 이후 사망한 고 박원순 서울시장쪽 법률대리인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어느 한 변호사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 관한 기사였다. 새삼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여직원들과 회식·식사는 물론 차도 마시지 마라”고 기업에 자문했는데, 이제는 “여비서를 아예 두지 마라”고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조언은 비법과 같은 자문이거나 획기적인 자문이 아니다. 남성들이 성폭력 범죄의 가해자가 될 것을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직장 등에서 여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자는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으며, 흔히 ‘펜스 룰’이라 칭한다.
펜스 룰(Pence rule)은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발언을 한 당시 하원의원)이 “(결혼생활 유지를 위해) 아내 이외의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으며 아내 없이는 술이 있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 발언한 것에서 유래한다. 기독교 복음주의 목사인 빌리 그레이엄이 신자들의 성적 부도덕을 막기 위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의 여행·만남·식사를 하지 말도록 주장한 것에서 유래해 빌리 그레이엄 룰(Billy Graham rule)로도 불린다.
그러나 “여비서를 두지 마라”는 발언은 펜스 룰조차도 아니다. 이는 펜스 룰을 넘어서 아예 고용 자체를 막겠다는 행위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 노동할 권리를 침해하는 차별행위다. “여직원들과 회식·식사는 물론 차도 마시지 마라”는 말을 비롯한 ‘사적 인간관계나 회식 등에서 여성을 배제해 여성을 제외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형태의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하는 단계에 우리 사회가 있기는커녕, 고용에서의 차별조차 정당화되고 있음을 확인하니 다시 좌절하게 된다.
남성이기에 성폭력범인 게 아니라 성폭력 가해를 한 자가 성폭력범인 것처럼, 여성을 잠재적 사기 가해자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무고가 우려된다고 하지만, 오히려 무고죄를 빌미로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몰아가고, 성폭력 문제제기 자체를 막는 것이 현재 일어나는 폭력의 양상이다. 또한 나는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고 신뢰한다. 성범죄 판단은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황이나 기록, 주변의 증언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판결이 내려진다. 설령 무고 사례들이 문제라 하더라도, 그건 사법부 쇄신을 요할 일이지, 여성의 고용을 막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직장에서의 성폭력 문제는 성폭력 가해자가 성폭력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해결책이다. 산업재해 원인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환경에 있는 것처럼, 업무불안정의 원인이 육아휴직을 쓰는 노동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력 배치가 적절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것처럼, 직장에서의 성범죄도 피해노동자의 잘못이 아니다. 원인은 성범죄가 용인되는 구조에 있으며, 그것에 맞게 해결해야 한다. 노동현장에 여성을 없애는 것은 성범죄 예방에도,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나도 “여”비서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비서 일을 하는 여성을 칭하는 정확한 호칭은 “여”비서가 아니라 그냥 “비서”이기 때문이다. 인간 또는 직업군의 기본형이 남성이고, 여성은 특수형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비서 일은 여성도, 남성도 할 수 있다. 이를 “여”비서로 규정하는 것은, 비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노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노동자가 아닌 “꽃”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아닌 성애의 대상으로 여기는 행동이다. 지금 회사들에 필요한 자문은 여성노동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차별을 개선하고, 여성을 동등한 노동자로 여겨 회사의 인재풀에 삭제된 인류의 절반을 복원하란 조언이다. 그것이 회사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이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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