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손가락이 논란이다. GS25·이마트24·카카오뱅크·교촌치킨·BBQ·SK·무신사·서울이랜드FC·국방부·평택시·경찰청 등 기업은 물론 정부부처까지 손가락 논란에 사과하고 홍보물을 수정하고 있다. 문제가 된 손가락 모양은 엄지와 검지로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음식을 집거나, 물건을 들거나, 경례하는 모습이다. 엄지와 검지의 집게 손 모양이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뜻이라며 남초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 논란을 접하고, 도통 이해가 안 갔다. 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인 홍보물에 ‘한국 남성 성기가 작다’는 표식을 몰래 숨겨 놔야겠다고 생각하겠나. 또 어떤 사고 과정을 거쳐야 물건을 집는 동작의 그림에서, 휴대전화기를 가리키는 동작의 그림에서, 경례하는 동작의 그림에서 한국 남성 성기 비하를 떠올릴 수 있는가. ‘사회 곳곳에서 암암리에 존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경력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불사하고) 한국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메갈리아의 상징을 홍보물에 그려 넣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가? 본인들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페미니즘과 미러링에 대한 반발과 복수심으로 항의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논란을 마주한 기업의 태도다. 기업의 이미지 보호를 위해 즉각적인 사과와 홍보물 수정은 기본이다. GS25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는 징계를 받았고, 담당 마케팅팀장은 보직 해임됐다. 서울이랜드FC는 계약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책임으로 떠넘기며, 일러스트레이터와 홍보·마케팅 담당자는 모두 ‘남성’이라고 해명했다.
부당한 논란에 노동자를 지켜주는 곳이 한 곳도 없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부처 태도도 비슷하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경찰청), “억울하지만”(국방부)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논란이 일자 즉각 홍보물을 수정하고(경찰청), “주의하겠다”(국방부)고 했다. 정부부처조차 디자이너와 홍보 담당자, 그리고 디자이너의 창작물을 존중하고 보호하기보다는, 마치 지금의 부당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인 것인 양 여지를 남겼다.
몇몇 기업에서 굳이 디자이너와 홍보 담당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것이 또 해명의 근거가 되는 것도 문제다. 다시금 여성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담당자가 남성인 것과 이번 논란이 무슨 상관인가. 해당 논란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담당자가 남성이면 한국 남성 혐오의 우려가 종식되나? 그렇다면 여성을 채용한 기업은 이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여성이라서 의혹의 여지가 남아 있는 건가? 남성이니 괜찮다는 건, 여성을 일터에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플랫폼노동과 프리랜서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소비자가 강한 나라에서 기업의 이미지 관리를 명목으로 노동자가 없던 잘못도 뒤집어쓰고 징계와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의 경우 더 쉽게 책임 전가와 해고·계약해지를 당하기 쉽다.
이는 여러 산업에 걸쳐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상 출입 금지 관련해서 일부 주민이 택배노동자에게 항의와 조롱을 하는 전화와 문자를 보내 택배노동자가 정신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있었다. 노동자가 문자폭탄에 시달릴 동안 기업은 무얼 했나. 배달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배달을 이미 왔는데 다른 곳으로 배달해 달라거나 조금 늦게 왔다고 욕설을 하는 등 소비자가 노동자들에게 불합리한 요구를 하고 항의를 할 때 플랫폼 기업은 어떠한 보호조치를 하고 있는가.
일단 덮어놓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노동자 보호에도, 회사 이미지에도,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좋지 않은 선택이다. 합당한 문제제기라 보기 어려운 소비자 항의가 있을 때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갈수록 쉽게 해고당하고 계약해지 당하는 고용형태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업이 노동자들을 일정 수준에서 책임지기 위한 장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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