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왜 여자들은 배달 오면 숨어?”라는 물음을 받고 생각해 봤다. 왜 나는 방금 숨었지? 일단 이 자취방에 여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거나 귀찮은 날에는 밖에서 먹고 오거나 집에 오는 길에 포장을 해 온다. 정 혼자 배달 주문해서 먹는 때에는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한다. 내가 무방비로 맘 편히 지내는 사적인 공간에 모르는 사람(특히 대개 남성)을 향해 문을 열어 줄 만큼의 세상을 향한 신뢰는 없다.
이는 나만의 막연한 공포가 아니다. 실체가 있는 두려움과 걱정이다. 몇 년 전 처음 자취를 할 때 ‘집에 남동생 신발을 둬라’는 등 친구들이 알려 준 팁들만 봐도 공유된 불안감인 것을 알 수 있고, 실제 기사화까지 된 사건들만 봐도 실체가 있는 두려움임을 알 수 있다. 집에 침입해 성폭행하거나 시도하는 범죄사건도 매년 보도됐다. 언론으로 공개된 강간과 강간미수 사건들을 보면 여성이 혼자 산다는 것 등과 같은 거주지의 특성을 미리 파악한 후에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노려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은 2021년에 한 배달노동자가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엘리베이터에서 성기를 노출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헬멧과 오토바이 번호판을 토대로 신고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포장 봉투에 성희롱 문구를 적어서 배달한다든지(그리고 이를 ‘장난’이라 해명했다), 고객에게 성희롱하고 스토킹하는 문자를 보내는 사건들이 이슈화됐다. 지난 정부 국민청원에서 이슈가 됐던 사건 중 하나는 미성년자 강간으로 성범죄자 신상이 공개된 사람이 배달하고 있어서 불안하다는 내용도 있었다.
혼자 일하는 여성 자영업자나 여성노동자를 향한 성범죄 문제도 있다. 지난달에는 40대 남성 배달노동자가 식당에서 일하는 20대 여성노동자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범죄가 있었다. 배달 일을 하며 알게 된 피해 여성노동자를 스토킹해 접근금지 조치까지 받았음에도 다시 찾아가 만나 달라고 협박하며 불을 지른 것이다.
이런 상황으로 성범죄자 및 강력범죄자의 배달업 취업 제한 요구가 몇 년 전부터 있었다. 배달업은 집에서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일이라는 점과 주소와 거주지의 특징이 노출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필요한 조치다. 또한 집은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며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 장소도 아니라는 특수성이 있다. 형사정책연구의 ‘성폭력 범죄자의 피해자 선택’ 논문을 보면 범죄자가 피해자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피해 여성이 혼자 있는 상황, 침입하기 용이한 상황, 피해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황 등 범행 당시의 상황에 따라 범행 대상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피해자의 집 주소와 건물 출입방법이 노출되니 보복이 두려워 신고와 고소를 망설이게 된다는 점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과거 내가 체불임금을 신고할 때 근로계약서에 적었던 집 주소 때문에 망설였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신고를 망설이는 피해자의 두려움이 어떨지 이해가 간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 이사를 하거나 피해 자영업자와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거나 가게를 폐업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와 계속 마주치게 된다. 이는 노동권·안전·생존의 문제이기에 배달업에도 성범죄자 및 강력범죄자의 죄질과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해 특정 기간 동안 취업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
최근 우아한청년들은 배민커넥트 약관을 개정해 성범죄자 등의 배달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더 등은 본 계약 체결 이전에 특정강력범죄, 성범죄, 아동 및 청소년 관련 범죄, 마약범죄 등의 범죄경력이 없으며 본 계약기간 중에도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로 인해 처벌을 받지 아니할 것을 진술 및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개정약관은 다음달 14일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약관개정에도 기업이 범죄경력을 확인할 법적 권한은 없기에 성범죄자 취업을 강제로 제한할 수는 없다. 아동시설·택배업 등의 업종에서 성범죄자의 취업을 특정 기간 제한하는 것에 반해 이륜차 등을 통한 배달업에 대해선 법적으로 성범죄자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약관개정은 선도적 조치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을 확언하긴 어렵다.
배민커넥트가 앞장서 시작하는 이번 약관개정이 선언적 의미나 면책 수단에 그치지 않으려면 현행법 개정을 통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사각지대인 영세한 사업장까지 포괄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약관개정이 아니라 법을 통한 규제가 필요하다. 여성 배달노동자가 배달일을 하며 겪는 성희롱·성폭력 피해에 대한 대책 역시 필요하다.
글 작성을 위해 배달노동자가 모여 있는 네이버카페 등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보니 ‘대면서비스이니 당연히 동의한다’거나 ‘배달의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다’ 등의 찬성 의견이 대다수였다. 성범죄자의 배달업 취업 제한은 아동과 여성뿐 아니라 산업과 동료 노동자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의 경영활동과 시민의 불안을 이해하는 정부의 대책, 국회의 책임 있는 입법, 성범죄를 없애려는 배달노동자와 시민의 함께하는 노력이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는 말 대신 신뢰관계의 ‘감사합니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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