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현 Feb 20. 2023

성희롱과 성차별이 고용단절을 만든다

매일노동뉴스 기고

A씨는 대학원까지 졸업했을 정도로 전공 분야에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직장내 성희롱이 지겨워서 커리어를 포기했다. B씨는 승진하자 악의적인 성적 소문에 시달렸다. 다른 여성 동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동기들은 성희롱과 성차별을 견디다 못해 다른 직종으로 이직했다. C씨는 직장에 있는 동안 성희롱 상처가 계속 생각나서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D씨는 성희롱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계약 갱신이 거절됐다. E씨는 성희롱 신고 후 힘들어하는 피해노동자에게 “퇴사하라”라고 말하는 상사를 목격했다.



위의 사례는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가 올해 개최했던 “너, ○○이가 왜 퇴사했는지 알아?” 토크콘서트 참여자들이 말한 사례들이다. 기존 고용단절(경력단절) 담론에서 주요하게 언급되지 않아 왔던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다루게 된 시작은 에세이 공모전이었다. 위드유 센터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수동적인 경험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의미를 변화시키고 이를 공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직장내 성희롱’과 ‘조직문화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에세이 공모전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에세이에서는 반복적으로 퇴사가 언급된다. “내가 직업 활동에 품었던 기대와 목표는 직무와 하등 상관없는 성희롱 사건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든지, “내가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고 했고, 원래 회사가 그런 건데 그런 회사가 싫으면 내가 떠나야 하는 거라 했다.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다음 퇴사를 했다”는 등 직장내 성희롱으로 노동환경이 나빠져 퇴사하는 증언들이 매년 글로 남겨졌다. 계약이 종료되거나 사직서를 쓰는 일은 부지기수다.



에세이의 증언뿐만이 아니다. 통계로도 직장내 성희롱과 고용단절의 연관성이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고용노동부의 성희롱·성차별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사건을 분석해 보니, 직장내 성희롱 사건 이후에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해고당한 경우가 무려 25.3%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평등의 전화’ 상담 분석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상담 중 직장내 성희롱 상담이 가장 많으며, ‘직장내 성희롱 상담 내담자의 32.3%가 퇴사했거나 퇴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실태조사는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의 51%는 비자발적으로 고용을 변동할 가능성이 있다(경력을 단절하고 싶은 의사가 있는 응답자와 이직하고 싶은 응답자를 합한 수치)는 결과를 보였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과 처리 과정을 지켜본 동료 노동자, 즉 간접 경험 피해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51.9%가 경력단절 의사나 이직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일터에서 성희롱·성차별 문제는 노동환경을 결정짓는 주요한 노동문제다. 성평등하지 않은 직장과 성희롱·성폭력 문화를 방치하는 직장은 고용단절을 유발한다.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는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여성경제활동법)은 2021년 개정되며 임신·출산·육아뿐만 아니라 근로조건도 여성 경력단절의 주요한 원인으로 포함했다. 여성들이 성희롱과 성차별로 비자발적으로 일터를 떠나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실업급여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용보험 상실 사유 코드에 직장내 성희롱이 없어 피해노동자의 실업급여 수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국가 공식 통계로도 남지 않는다는 여성노동계의 지적이 이어졌다. 올해 8월 “사업장에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성희롱·성폭력, 그 밖의 성적인 괴롭힘을 당해 이직한 경우”도 고용보험 상실 사유 분류 기준에 새로 추가됐다.



성희롱으로 인한 퇴사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다뤄져야 한다. 회사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한국노동연구원 실태조사는 직장내 성희롱이 피해노동자와 간접경험자의 경력단절과 이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지만, 동시에 ‘경력단절과 이직의사를 가지고 있는 피해자 상당수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이 의사를 변경할 것’이라고 응답했다며 희망도 함께 제시했다. 에세이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성희롱 피해를 겪었지만 ‘동료와의 연대’와 ‘조직 차원의 대응’ 덕분에 퇴사하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피해노동자들이 근거다. 이들은 여전히 일하고 있고, 일하며 싸우고 있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701

매거진의 이전글 수치심은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