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엄마는 항상 일했다. 내 기억이 있는 유치원 언저리부터 현재까지 가장 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일하는 모습이다. 집에서 식사를 만들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삼 남매 뒤치다꺼리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휴게소에서 판매사원으로,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우리를 돌보는 동안에도 엄마는 계속 돈을 벌었다. 엄마는 집에서 우리와 함께 볼펜을 조립했다. 우리가 조금 크고 나자 한식조리 자격증을 따고 학교급식 조리 일을 했다. 아빠가 희망퇴직을 하자 돈가스집을 했고 손목이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하게 되자 동네에서 슈퍼를, 지금은 정육점을 한다.
국민연금을 수급할 연세가 다가오면서, 부모님은 연금과 노후에 대한 대화를 자주 하신다. 엄마는 아빠만큼, 오히려 아빠보다 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계속 일을 했지만 아빠의 예상 연금 수령액과는 큰 차이가 난다. “엄마는 연금 때문에 이혼 못 해”라는 뼈 있는 농담에 “그러면 나는 엄마랑 같이 살 건데? 연금 분할해서 받을 수도 있고”라고 답했지만,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그러하듯 개인(특히 여성)의 부담으로 사회가 유지되고 굴러간다는 점과 경제권이 독립되지 못한 여성들의 상황이 씁쓸했다.
올해 세계여성의 날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맞이했다. 국제노총에서 인턴을 하게 돼 브뤼셀에 잠시 머물렀는데, 마침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에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벨기에노총(FGTB)과 벨기에 기독교노조연맹(CSC)은 브뤼셀 중앙역 인근 광장에서 총파업을 했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 여성의 평등한 노동시장 접근성, 성 기반 폭력과 괴롭힘 종식, 러시아 침공 반대 등을 이야기했다.
이번 총파업의 핵심 요구는 “성별 연금격차 해소”다. CSC에 따르면 벨기에에서 여성의 연금은 남성보다 평균 30%가 낮다. 더 많이 유급노동을 하고 돈을 벌수록 연금도 높아지기에 시간제로, 비공식 부문에서 낮은 급여로 일하는 여성들은 연금이 낮으며, 노인 빈곤에 여성이 더 취약하게 만든다. FGTB에 따르면 벨기에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22.7% 적게 벌며 시간제 일자리의 80%는 여성이 일한다. 비혼모의 경우 더욱 큰 부담과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의 성별 연금격차도 심각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노후소득보장 종합분석’에 따르면 65세 이상 여성 노인의 연금 수급률(33%)은 남성 노인(66%)의 절반에 불과하며, 평균 연간 수급액 역시 여성(489만원)은 남성(861만원)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공적연금 가입률도 여성(66%)이 남성(77%)보다 낮다. 특히 중장년층 남성의 가입 기간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39세 이후 여성의 가입 기간은 정체되는 것으로 미뤄 보아 여성의 고용단절 문제가 연금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벨기에의 노조는 여성의 연금수급액이 적은 것을 노동을 비롯한 총체적인 성차별 문제로 바라보고 대응하고 있다. 불평등한 연금구조를 시정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에서의 여성차별 개선, 남성의 노동시간 감소와 여성의 노동시간을 증대(남성이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다), 남성의 육아휴가 의무화, 조기 아동보육 및 학교 밖 보육을 요구한다.
한국에서 여성은 태어날 땐 남아가 아니어서 살해당하고 살면서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시달리고, 구직을 하려 하니 채용 성차별에, 취업을 하면 성별 임금격차에 유리천장·유리벽·유리절벽 3종세트에, 시간제·저임금·무급노동에, 결혼·출산·육아·돌봄을 하게 되면 고용단절에, 노후엔 적은 연금수급 차별까지 겪는다. 벨기에의 세계여성의 날 총파업의 상징물은 슈퍼 마리아(SUPER MARIA)였다. 성차별한 사회 속에서 사는 여성이기에 맞닥뜨리는 난관을 하나하나 넘고 깨부순 마리아가 맞이한 연금차별이라는 또 하나의 불평등은 마리아가 여정을 잘못한 결과물이 아니다. 젠더 고정관념과 사회의 여성차별이 심어 준 결과다. 여성에게, 저소득자에게, 취업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연금체계와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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