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기고
독일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타국에서 여러 대륙 여러 나라의 다양한 배경을 지닌 노동운동가·연구자들과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이들과 함께 노동정책을 배우며 활동하는 시간은 다른 배경 속에서 노동운동을 한 사람과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가 해 왔던 운동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른 환경 속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는 운동 양상을 발견할 때면 우리는 세계로 연결돼 있음을 느꼈고, 서로의 운동에 참고할 만한 부분을 발견할 때면 국제교류의 필요성을 생각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준비를 하며 바로 일할 공간을 찾았다. 노동조합, 중간 지원조직,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등을 고민한 끝에 어느 조직에서든 ‘여성노동’ 분야에서 활동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동조합 외에도 행정조직이나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고민했던 이유는 ‘좋은 의제와 주장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해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이슈파이팅이 주된 사업 내용이었던 노동조합에서 여러 해 활동하며 느꼈던 아쉬운 점 한 가지는 ‘직접 회사에 개입할 수 있으면, 바꿀 수 있을 게 많았을 텐데’였다. 기업 안에서 또는 기업과 함께 노동현장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배우는 것도 노동현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센터에 지원했고 출근하고 있다. 위드유센터는 성폭력 문제를 드러내는 미투(#MeToo) 운동의 외침에 함께, 그리고 사회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응답하는(위드유, #WithYou) 기관이다. 성희롱·성폭력 없는 성평등 안심일터를 만들기 위한 곳이다.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 성희롱·성폭력 예방체계를 구축하고,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의 사내 대응과 비사법적 구제지원 등을 도와 피해 지원 기반을 강화하고, 기업과의 공동캠페인을 통해 성평등 조직 문화를 확산하는 기관이다. 특히 서울시의 소규모 사업장을 지원한다.
다른 노동 문제들처럼 직장내 성희롱에서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상시근로자 10명 미만 사업장은 직장내 성희롱 교육자료나 홍보자료를 사업장에 게시 또는 배포하는 방법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 시행을 대체할 수 있다. 또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라 상시근로자 30명 이상인 경우에만 고충처리위원을 둬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고충처리위원은 업무 환경에 대한 불만이나 부당한 처우, 직장내 성희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사건 접수나 소통 등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장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예외나 고충처리위원에 대한 예외를 두는 현실과 달리, 직장내 성희롱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에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여성노동자회의 2021년 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피해 내담자의 55%가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했다. 올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3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응답자가 최근 3년 동안 직장내 성희롱 피해를 직접 겪은 비율은 29.6%(여성 30.7%, 남성 25.6%)에 달했다.
그래서 위드유센터는 서울시의 30명 미만 사업장을 다각도로 지원한다. 사업장의 현실적 상황에 맞춰 양질의 성희롱 예방교육 핸드북을 배포한다. 30명 미만 사업장에 무료로 직장내 성희롱 교육을 지원한다. 소규모 사업장은 직장내 성희롱 예방체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내 처리 절차 마련 등의 컨설팅 지원을 하며, 사업장의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건처리 지원을 통해 피해자 관점으로 회사가 사건을 공정하게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기업·시민과 함께 캠페인에 나서 인식 개선을 도모한다. 직장내 성희롱에 관한 정보를 아카이빙해 담론 확산에 노력을 기울인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사업주나 리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의 의지에 따라 사건 해결 양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직장내 성희롱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사업장의 규모나 업무 특성상 가해자 분리 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은 사업장 구성원들의 성평등 의식이 중요한 것이다. 실질적인 사업장 변화를 만들어 내는 위드유센터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과 기업·행정의 한가운데에 있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