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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단 Jun 27. 2024

최고의 상속녀

야, 너두 할 수 있어_05

나는 유일한 딸이자 막내로 또래에 비해 부모님이 연로하신 편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부모님의 수술이나 질병 문제가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부모님은 여든 가까이까지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사셨다.

그러다 엄마가 70대 후반에 위암에 걸리셨고,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나 3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난관이 있긴 했지만 항암도 우려했던 것보단 수월히 지나간 후, 일상으로 회복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일년 후 이어진 낙상 사고에 고관절이 부러진 엄마는 수술에 이어 자리에 누우셨고 그때부터 미혼이었던 막내 오빠와 나의 간병생활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새벽에 화장실을 가시는 엄마 때문에 불침번을 서며 설잠을 자는 정도라 간병으로 치면 아주 하위레벨에 속하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그리 받아들이긴 어려웠던 것 같았다.

다행히 엄마는 회복력이 좋아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셨지만 두 번의 큰 수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이번 순서는 치매... 그야말로 청전벽력 같은 현실에 마주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는 병원 출입은 물론 건강검진조차 싫어하시며 "병 걸리면 그냥 죽지, 뭐가 대수냐." 라시던 아빠는 그런 엄마를 딱하고 맘 아프게 지켜보실 뿐, 당신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신 듯 하다. 


치매에 걸린 엄마는 방금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시작으로 있지도 않은 일을 믿었고, 망상에 빠져 의심을 하기 시작했는데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딱히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지만, 외출 때면 꼭 차고 나갈 만큼 애정하는 시계가 있는데 이십 여년 전, 유럽 여행에서 아빠가 엄마에게 사준 '롤*스' 이다.

당시 나는 방송중임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고 웬만하면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자고 출퇴근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

온에어, 그것도 120부가 훌쩍 넘는 연속극의 작업량과 업무 집중도는 거의 전쟁터에 나간 군인과 맞먹을 정도이다. 

쉬고 있어도 쉬는 게 아니고,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고, 늘 신경이 곤두선 채 예민해져 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까워 방광염에 걸리거나 (젊은 작가라면) 밤을 새는 일도 예사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딴에는 부모님 생각해서 얼굴을 비치고 출퇴근을 한 건데, 어느 날은 시계가 없어졌다며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아무도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으니, 범인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치매임을 감안해 이해하고 설명했지만 집필 중인 내게 막무가내로 전화를 해 닥달을 했고, 거기에 '정신이 말짱한 줄 알았던' 아빠까지 나서서 날 범인으로 지목하니, 설움이 터저버렸다.

다시는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경찰을 불러 시계를 찾으라고까지 했다.

결국 시계를 찾았지만 그 후로 그 시계는 두 번 더 없어졌다 나타났고, 그 때마다 범인은 나였고 그 외 끝까지 찾지못한 홍삼과 목걸이의 도난물품이 내 앞으로 추가 되었다. 

이미 그때부터 아빠의 치매는 중증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아빠는 하루가 멀다하고 알 수 없는 엉뚱한 소리를 사실인 것 마냥 말씀하셨고 가족 모두를 사기꾼, 도둑으로 몰아가며 화를 내고 욕을 하셨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퇴행하는 '착한 치매' 라면 아빠는 속도도 빠르고 공격적인 '무섭고 고약한 치매' 였다.  

하루도 끊이지 않고 원망과 의심이 이어지며 가족들을 괴롭혔고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 식사를 거부하시거나 술을 드시거나 막무가내였고, 그러다 약해진 다리 근육 때문에 화장실에서 넘어지셔서 머리와 얼굴을 크게 다치는 등 위기의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치매다 보니, 입주 요양사분을 모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분마저도 아빠의 폭력성에 두 손을 들고 나가버리실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간병지옥' 이라는 말이 뭔지... 지금 생각해보면 '지옥문' 근처에도 못간 건데, 그때는 너무도 급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모든 게 혼란이고 갈등이었던 것 같다.

간병은 그 자체로서도 힘들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형제, 가족 간의 갈등이 심리적으로는 더 힘들다.

또한 강건하고 굳건했던 부모의 모습이 한없이 나약해지고 보잘 것 없어지고 낯설어지는... 그야말로 '태산이 무너지는 것' 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참 서글프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제어하고 통제할 이가 없어지자 아빠는 마지막 수단인 요양병원으로 가실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그토록 폭력적이던 아빠는 뭔가를 감지했는지 대기실에서는 병든 짐승처럼 혹은 공포에 질린 아이처럼 퀭하고 불안한 눈으로 말 없이 휠체어에 앉아계시다 입원을 위해 몇 가지 검사를 하자 그제야 난동을 부리며 "여기에 내가 왜 있냐, 얼른 집에 가자." 라고 화를 내셨다.

아빠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던 길,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빠를 위해 일상을 포기하기 싫고, 희생하기 싫은 내 이기심에 경멸할 정도로 화가 났고 낯선 곳에서 버려졌단 마음에 두렵고 상처 받을 아빠를 생각하니 정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절절했지만 그 발걸음은 또 쉽지 않았다.

그렇게 넉 달 여를 요양병원에서 누워 지내시던 아빠는 작년 3월, 편안히 잠드셨고 엄마는 '롤*스' 시계를 내게 물려주셨다. 


패피였던 울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와 여전히 치매로 집에서만 두문불출하시는 엄마가 '롤*스' 시계보다 더 값지게 물려주신 유산이 있다. 

바로 '건강과 노후' 에 대한 제대로 된 경각심이다.

나는 미혼에 자식도 없는 독거중년이다. 아파도 내 발로 병원에 가고 약국에 가야한다.

자식도 외면한 간병을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 누구에게도 폐가 되긴 싫고, 특히나 내 몸뚱이를 남에게 맡기는 존엄성 바닥의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생로병사이지만,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건 의미가 있다.

그 때부터 나는 먹는 것부터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운동을 시작했으며 일이든, 인간관계든... 어떠한 갈등 상황에서도 '건강' 을 먼저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는 나이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부모님이 주신 많은 것 중 이보다 더 큰 유산은 없고, 그것을 제대로 받아낸 나는 패리스힐튼 부럽지 않은 최고의 상속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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