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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단 Jul 07. 2024

여름, 밤의 열기

마실 가듯 런던 다녀오기_01

현지인 친구가 떠나기 전에 최소 열 다섯 번은 얘기했다. 

"긴 팔, 긴 바지 좀 넉넉히 가져와."

하는 소리라고 들었고, 열심히 운동한 나는 '무적건 벗어야' 할 의무감에 귓등으로 날려들었다.

한여름 휴양지에나 어울릴 법한 가볍고 얇고 짧은 옷들로 옷 파우치를 채우며 마지막 순간, 캐리어를 열고 맨투맨 티셔츠 하나와 얇은 아우터 두 개를 챙겼다. 


런던의 관문은 녹록하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비가 쏟아졌고 바람이 불어 내 짧은 반바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성질 고약한 노인네가 "올테면 와봐. 이것이 런던이다." 라고 텃세를 부리듯 혹독했다.

시차도 적응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밤은 더욱 매서웠다. 

있는 긴팔을 다 껴 입은 것도 모자라 친구에게 옷을 빌려 입고 양말까지 신고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도 기온은 계속 더 떨어지고 비는 더 세차게 몰아친다. 

"나한테 왜 이래..." 


세상에... 무려 7월이라고, 7월!!!

대강 떠난 자의 결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지금도 손을 호호 불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게으름을 여유라고 포장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주 내내 이 GR일 예정 




날씨가 기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익히 아는 상식에, 몸소 깨달은 바였지만 여기 와 새삼 느낀다.

내가 즐겨봤던 영드의 '냉소적인 인물들과 조소하고 비틀고 깔아뭉개는 블랙 코미디' 는 아마 이 부족한 일조량과 괴팍한 추위의 영향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장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허락된 여름은 너무 짧다.

거기다 북쪽에 있는 이 나라는 밤 10시 11시에도 대낮 같이 밝으니, 그렇지 않아도 '밤은 짧은 법' 인데... 

영국의 '여름 밤' 은 얼마나 스치듯 지나갔을 것인가!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벌써 그립다. 

서울의 후덥지근한 여름 밤의 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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