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에서 & 사랑이 색을 바꾸다
<4편 – 그림자 속에서>
하필이면, 그 무렵 그녀와 함께 일하던 선배가 매일 저녁 일을 핑계로 연애편지 같은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동료 남자는 술에 취해 정신없는 상태로 그녀에게 전화했고 그가 대신 받자 지금까지 같이 있었다고 우겼다.
그가 원하는 대로 선배에게는 단답형 답을 보냈고
동료의 사과 문자까지 받아냈다.
그 뒤로,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은 날이면
그는 상처 입은 표정으로 그녀를 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다정하게 말했다.
“오빠뿐이야, 다시 태어나도 오빠뿐이야.”
모든 건 그의 뜻대로 했다.
그것이 뜨거운 사랑에 보답하는 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집착은 더욱 짙어져 어둠처럼 그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녀만 쉬는 날이면 남자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 시간에 네가 밖에 있으면
나 불안해. 보고 싶어서 그래, 알지? ”
그 말은 애틋한 고백은 아니었다.
그는 늘 말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듯 웃지 마.
색조 화장하지 마.
옷은 바지와 무채색만 입어.”
그의 불안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의 얼굴을 한 두려움, 서로에게 감옥이었다.
그녀는 그 안에서 숨을 고르게 내쉴 수도 없었다.
사랑의 불꽃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불꽃이 타오를수록 그녀의 그림자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녀는 상자를 만지작 거렸다.
그에게 건네려는 그것.
<5편 – 사랑이 색을 바꾸다>
그녀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그는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작은 숨결마저 스며들 듯 고요한 순간이었다.
안에는 은은한 빛을 머금은 터키석 나비 문양의 커프스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짧은 쪽지가 있었다.
“Près de toi, mais avec des ailes libres.”
(네 곁에, 자유로운 날개로.)
그날 밤,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그는 젖은 바이크를 멈춰 세운 채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채, 손에 든 헬멧을 그녀에게 씌워주며 말했다.
“같이 가줄래?”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고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크가 빗속을 가르며 달려 나갔다. 헬멧 안에서 그녀의 숨결이 흘렀고 그녀의 젖은 손끝이 그의 허리를 감싼 채 그의 등에는 그녀의 체온이 번져왔다. 차갑던 빗물 속에서 오히려 둘의 심장은 뜨겁게 뛰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닷가였다. 비가 걷히자, 흐린 구름 사이로 햇살이 흘러들어왔다. 물결 위에 부서진 빛이 파도처럼 밀려와 두 사람을 감쌌다.
그는 젖은 그녀를 꼭 감싸 안듯 수건을 둘렀다.
애처롭게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한참 품에 안고 있다가 입술이 파래진 걸 보곤 조용히 한숨 쉬며 말했다.
“추웠지? 나 때문에 고생했어. 미안해.”
그녀는 그를 조용히 웃으며 바라봤다. 그는 말하는 대신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가에도 같은 빛이 번져 있었다.
그날 이후, 그들의 사랑은 색을 바꿨다.
그는 이제는 스스로의 불안을 조절하며 그녀 곁에 머물렀다. 그녀는 의미를 찾기를 원했지만 그 갈망을 굳이 채우지 않고 마음에 품은 채 살아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불태우는 대신 균형 잡힌 긴장 속에서 사랑을 이어갔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격정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이제는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설레고 그 순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이 남았다.
애틋하고, 조심스럽고, 아껴주는 마음.
사슬이 아닌 날개로 이어진 사랑.
빛바랜 하늘처럼 오래도록 스며드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