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 가을 속 푸르름을 걷다

by 소이

어느 날, 선배에게서 불쑥 연락이 왔다.

“같이 학회 갈래? 학회 끝나고 걷고 싶은데… 이상하게 걷는 거 생각하면 네가 떠오르더라.”


가볍게 대답하고 탑승한 비행기. 착륙하자 선배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 그런데 방이 하나야. 정말 나 믿어줄 수 있지?”


그날 밤, 선배는 소파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고, 나는 낯선 침대 위에서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새벽의 고요 속, 서로의 호흡만이 희미하게 겹쳐 들려왔다.


아침, 커튼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흘러들었다.

하늘은 투명하게 맑았고, 저 멀리 바다와 닿는 경계선은 희미하게 풀려 있었다. 햇살 조각들은 파도 위에 흩어져 은빛으로 번졌다.


우리가 걸어 나선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선이었다. 파도가 밀려왔고, 갈매기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장난스럽게 찍혀 있었다.


걷던 중 선배가 물었다.

“선크림 있어? 네 짐을 내가 들고 있으니 손이 없네… 내 얼굴에 좀 발라줄래?”


나는 속으로 ‘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다…’를 세 번쯤 외우며, 그의 얼굴 위로 조심스레 손끝을 올렸다. 햇살이 그의 뺨을 따라 번져 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었다. 멀리 오름들이 겹쳐 있었고, 바다는 바람에 흔들리며 은빛 물결을 반짝였다. 걸음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바람이 스며드는 듯했다.


선배는 일하며 겪는 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다. 내가 걱정스레 묻자,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 하루에도 별별 사람 다 상대하잖아. 혹시 몰라서 책상 밑에 작은 해머 하나 숨겨뒀어. 비상용이지.”


우리는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바다 위로 퍼져 나가 파도와 섞여 울려 퍼졌다.

햇살은 점점 기울어 바다 위에 붉은 길을 그었다. 은빛이던 파도는 붉은빛으로 물들며 반짝였고, 하루의 끝이 우리 발자국을 따라 길게 번져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말없이 창밖을 보던 선배는, 공항에서 헤어지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또 볼 수 있을까…?”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시간 안 되면, 만들어서라도 보면 되죠.”


내가 탄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선배의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서서히 멀어졌다. 차가운 가을 저녁 바람이 스며들 듯, 그의 시선은 끝내 나를 붙잡고 창 위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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