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의 여백
가을비가 내리던 날, 그가 좋아하던 노포의 따뜻한 국물에 혼자 숟가락을 담갔다. 국물 한 모금이 입안에 번질 때마다, 잊힌 꿈의 조각 같은 위로가 서서히 녹아들었다.
그는 자상하게 말하곤 했다.
“여기 맛있지? 재미교포 동료가 노포를 좋아해서 자주 오는 곳이야. 너도 좋아할 줄 알았어.”
그의 목소리가 문득 귀에 맴돌았다.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을 바라보았다. 식지 않은 온기 속에 아직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날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심야 영화표를 끊는다. 가끔은 두 장, 아니 세 장을,
옆자리는 언제나 비워두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그림자를 앉히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불빛이 깜빡이며 꺼지는 순간, 어둠은 커다란 물결이 되어 나를 삼켰다. 나는 또 다른 별빛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그와 함께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영화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지자, 그는 조용히 오른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왼손으로 팝콘 먹어야겠다.”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살짝 어색해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소리가 큰 장면마다 그는 손끝을 꼭 쥐었고, 화면 속 장면을 먼저 설명해주곤 했다.
“하하, 저 배우 원래 코미디 하는 사람인데 여기선 진지해서 이상하지? 그렇지?”
그의 목소리는 팝콘 향과 어둠 사이를 건너며 다정하게 스며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었다. 그는 영화보다 내 표정을 더 자주 바라보았고,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이었다.
그날의 온도가 아직 손끝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 운전대를 잡은 채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강물 옆, 차창에 스치는 불빛들은 오래된 기억이 흘려보낸 꿈결 같았다.
그가 좋아하던 올리비아 옹의 Meditation을 흥얼거렸다. 쓸쓸함조차 노래가 되어 밤의 공기 속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낯선 골목의 돌길,
물속에 잠긴 숨결,
책상 위 고요한 집중 속에서
그와 다시 만난다.
끝내, 들릴 듯 말 듯 빈자리에 앉은 첫사랑 그에게
나는 여리게 속삭였다.
“여전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