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는 줄 모르고… 앉은뱅이술
춥지만 햇살이 맑게 떨어지던 그 정오 후배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선배… 잠깐만 나와줄 수 있어요?”
우리는 작은 초밥집에서 마주 앉았다. 예쁘게 나오지만 양은 적은 곳. 참치 초밥, 연어 초밥, 장어롤이 가지런히 놓였고 후배는 이유도 말하기 전에 사케 먼저 시켰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평소보다 말수는 적었고 잔을 잡는 손이 조금 빨랐다. 그는 조심스레 내 쪽으로 사케를 밀었다.
“선배도… 한 잔만요.
취하는 줄 모르고 계속 마셔서 취한다는 앉은뱅이술 이라지만…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요.”
몇 년 만의 술.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날이 날인지라 힘들어하는 그를 위해 결국 잔을 들었다.
따뜻한 사케가 목을 타고 내려가자 오래 묵혀둔 감정들이 조용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가게를 나와 언덕길을 오르며
후배는 천천히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떤 말들은 바람 사이로 흩어지고 또 어떤 말들은 내 귀 끝에 오래 머물렀다.
잠시 벤치에 앉자고 해서 햇살 아래 나란히 앉았다. 가만히 있는데 낮의 느긋한 바람처럼 그의 입술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순간, 서로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공기는 단정했는데 둘 사이의 온도가 조금 흔들렸다.
무안한 듯 그가 말했다.
“술 깨러 가요.”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스타벅스로 내려갔다. 차가운 아아 한 모금에 흐트러진 마음이 조금은 정돈되는 느낌이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후배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말도 없이 포근하고 뜨겁게 안았다.
잠깐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이
모든 감정의 결을 바꿀 만큼 선명했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빠져나왔다.
그는 민망한 듯 자꾸 바보 같은 농담을 던졌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며 둘 사이에 묘하게 차가운 숨결을 남겼다.
그렇게 그는 30분간 그 자리에서 서성였다. 말이 끊겼다 이어지고 가끔 서로를 쳐다보다 피하기도 하고 다시 바라보다가 또 웃기도 했다.
마지막에 후배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어깨가 약간 처졌는데 걸음은 괜히 가볍게 흔들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천천히 바라봤다.
햇빛에 길게 드리워진 실루엣이
어쩐지…
오늘 마신 아아의 시원함보다 더 오래 남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