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얇게 겹겹이 쌓이던 저녁이었다. 이사할 집 계약을 마치고 나오니 건너편에 막 불을 밝힌 카페 하나가 보였다. 우아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 이상하게 그 카페로 이끌리듯 들어갔다.
문을 열자 클래식이 우아한 공간에 잔잔히 퍼지고 있었다. 키 큰 미남 직원들이 깔끔한 바리스타복을 입고 섬세한 동작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나는 향이 좋은 시그니처 커피를 주문했다. 작은 잔 속에서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괜히 벅찼다. 이제 저 건너편 집이 내 안식처라는 사실이. 눈 내리는 도시 풍경 속에서 그 집이 아득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는…
핸드폰 배터리가 2%였다는 것.
충전기를 꽂아 통화하려 했는데 테이블과 살짝 떨어진 옆 기둥 아래에 있어 소파에 앉은자리까지 충전 줄이 아슬하게 겨우 닿았다. 테이블은 고정되어 있었고 소파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몸을 살짝 비튼 채 간당간당한 자세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앞쪽 테이블에 남자 셋이 들어왔다. 보스와 부하 혹은 스승과 제자 같은 분위기. 그중 중심에 선 남자는 여유로운 카리스마가 있었다. 잠시 뒤 내 모습을 스치듯 보더니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향해 툭, 웃음을 흘렸다.
“저 아가씨가 웃으면서 너 계속 쳐다본다.
젊을 때는 저래도 돼~ 잘해봐라, 잘해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설마… 내 얘기? 아니겠지…’
웃으며 통화를 계속 이어갔다.
보스 옆에 있던 그 남자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젊고 댄디했고 입은 정장은 꽤 고급져 보였다.
‘뭐지? 설마 진짜… 내 얘기?’
나는 여전히 충전 코드에 반쯤 묶인 포즈였다.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그는 내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보는 순간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충전 줄에 묶인 여자.’
지금 내 상태가 딱 그랬다.
“전화번호 좀…”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순간 너무 놀라 커피를 쏟을 뻔했다. 나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몸을 바로 세우며 간신히 말했다.
“아… 중요한 전화인데… 충전줄이 짧아서요…”
그는 정적의 한가운데 떨어진 사람처럼 순간 얼어붙더니 그대로 자기 테이블로 급히 돌아갔다.
“아… 그… 전화하시는 거예요…”
그의 목소리는 작고 미묘하게 떨렸다.
보스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 중이라… 그랬던 거구나.”
그 젊은 남자는 얼굴이 붉었다 푸르스름해졌다. 괜히 물컵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타이밍이 아니었네.”
나는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충전이 조금 되어 케이블을 뽑고 창가 쪽 소파로 옮겨 앉아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커피는 이상할 만큼 감미로웠고 눈 내리는 저녁 풍경은 그날따라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