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세기는 손끝…
추운 날의 그림자
추위가 너무 매서워서 손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날이었다. 곧 크리스마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기분 나쁜 눈이었다. 하얗게 쌓이는 눈이 아니라, 녹아서 옷에 축축하게 스며드는 눈.
그는 오래간만에 좋은 옷을 입고 나왔다. 스펙 괜찮은 여자와 소개팅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소개팅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게 끝났다. 대화는 도무지 이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딘가 슬픈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나?’
돌아오는 길에 자책이 몰려왔다. 그러다 운 나쁘게, 눈과 비의 중간처럼 차갑고 축축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지러 주차장으로 돌아가기에는 기분이 너무 엉망이었다. 결국 그는 술 한잔 하기로 했다.
어둠 속의 술집
그가 좋아하는 술집은 묘하게 문이 너무 무거웠다.
밖에서 보면 전체가 검은 건물. 큰 창이 있지만 내부 조도 때문인지 안은 거의 어둠이었다.
그는 들어가자마자 독한 술을 들이켰다. 마음을 달래려고 했지만… 머릿속엔 자꾸 소개팅 여자가 떠올랐다.
그녀에 대한 첫 기억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그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작고 가녀린 몸. 그녀를 안은 잠자리를 자꾸 상상하게 했다. 그 스스로를 더 ‘남자답게’ 만드는 밤을.
그리고 그녀의 눈. 어딘가 슬픈 그 눈은 마치 비어 있는 마음의 공간을 자신이 채워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가 자신을 받아들이며 아프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그녀의 눈빛을.
입술은 더욱 그랬다. 바깥은 순한 분홍 안쪽은 점점 더 붉은 그라데이션. 순진한 욕망처럼 보이는 그 색감에 그는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느꼈다.
‘내가… 외로워서 미쳤구나.’
“죄송해요. 잠시 딴생각을 했나 봐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빛 아래서 더 슬퍼 보이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당황해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다.
…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그녀가 상냥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그 말이 유난히 차갑게 들렸다.
그리고… 다시
술이 깊게 취했을 무렵. 그는 테이블 위에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탁.
차갑고 작은 손이 그의 손등을 덮었다.
고개를 들자 소개팅에서 만난 그 여자였다.
하지만… 옷이 완전히 달랐다. 소개팅 때의 단정한 옷차림이 아닌 밤의 그림자를 몸에 걸쳐진 듯한 매혹적인 드레스.
가슴선 위까지 비치는 고급스러운 시스루 검은 드레스. 희미하지만 여린 어깨가 드러났다. 머릿결은 묘한 빛을 머금은 물결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눈은 더 깊고 더 슬퍼 보였다.
술 때문인지
꿈인지
현실의 경계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녀가 조용히 거의 숨결처럼 말했다.
“… 따라와요.”
그는 이상하게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발끝이 바닥에 닿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유유히 아름답고도 불길하게.
그리고 문이 열렸을 때 그는 깨달았다.
밖에는
…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만. 빛에 반사된 머리카락만.
발끝이 바닥에서 ‘살짝 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그녀는 뒤돌아 슬프고 뜨거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 오래 기다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