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 두 사람은

감각을 세기는 손끝

by 소이

일상 속 그


그는 일하는 내내 그녀를 떠올렸다. 연락을 해볼까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할까. 고민은 계속 맴돌았고 집중은 흐트러져만 갔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러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그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 연봉이면 굳이 줄 서서 이런 커피 마실 필요도 없는데… 오늘따라 기다리는 시간은 유난히 답답했다. 동료들의 말도, 후배들의 농담도 모두 성가시게만 들렸다.


회사로 돌아와서도 그는 펜만 딸깍거리며 서류 더미를 쌓아둘 뿐 서류 한 장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이른 퇴근길, 어떤 기척


저녁 무렵,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태양이 지기 직전의 선명한 햇빛이 도로를 가르듯 강렬하게 번졌다. 그는 잠시 눈을 찡그렸다. 빛이 눈에 반사되며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퍼졌다.

그때였다.


눈을 치우던 경비 아저씨가 삽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아저씨는 놀란 표정으로 떨어진 삽과 차 안의 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본 사람처럼. 혹은 갑자기 몸이 떨려 멈춰버린 사람처럼.


겨울바람이 스쳤다. 쌓인 눈 위로 얇은 얼음 조각이

바스락거리며 흩어졌다.


그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길이 평소보다 더 길고,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 등 뒤에서부터 천천히 그를 감싸오는 듯했다.


그 시간, 그녀는


그 시간 그녀는 깊고 차가운 숨을 내쉬며 고통 속에서 눈을 떴다. 가슴 한가운데서부터 서서히 퍼져 올라오는 냉기. 마치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가 척추와 손끝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작게 말아 안았다.

이 추위는 단순히 기온 차에 따른 반응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침대 옆 서랍을 힘겹게 열어 타이레놀을 꺼내 삼켰다. 삼키는 순간조차 목 안쪽이 얼어붙는 듯했다.


잠시 후, 몸이 조금 진정된 듯했지만 ‘괜찮아졌다’기보다는 그저 ‘견딜 만해진’ 상태에 가까웠다. 그녀는 천천히 욕실로 걸어갔다.


얼어붙은 몸을 데우다


하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조심스레 몸을 담갔다. 뜨거운 물이 피부를 적시는 순간 얼어붙어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했다.


유리창 밖에는 밤새 쌓인 눈이 고요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등 위의 작은 상처를 바라보았다. 붉게 올라올 법한 상처는 이상하게도 창백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얼어붙은 것처럼 피가 멈춘 사람의 몸처럼.


“이 정도는… 곧 회복되겠지.”


이어진 생각은 다시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했다.

육체의 상처는 금방 아물어도 마음의 상처는 더 악화될 뿐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욕조 위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천천히 그녀의 표정을 흐릿하게 지웠다.


가장 조용한 방


욕실에서 나온 그녀는 집 안에서 가장 조용한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무도 들이지 않는 오직 그녀만 알고 있는 숨구멍 같은 공간이었다.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명상을 시작했다. 심장을 눌러오는 차가운 고통을

잠시라도 가라앉히기 위해. 모든 걸 잊기 위해.

기억을 잠재우기 위해.


잊으려 하면 할수록 그 얼굴이 떠올랐다. 그 남자. 그리고 아주 오래된 더 깊은 과거의 그림자들까지.


그녀가 숨을 고르려는 바로 그 순간 방 안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그녀의 손등을 스쳐가는 누군가의 차가운 손길. 입술 근처로 내려앉는 온기 없는 숨결.


누군가가 바로 곁에서 그녀의 숨과 겹쳐…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함께 맞이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