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자기 계발의 경계
오전 반나절 2시간가량 있었는데도, 참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고 인사를 나눴다.
입사하고 8년 차는 무시 못할 시간이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한 주 전에 (남편과 사내 부부) 가족행사 때문에 초대받아 나에게는 오랜만이 아닌 공간이었지만,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인지 기분도 옷차림도 발걸음도 남달랐다.
1년 3개월의 육아휴직.
예정대로라면 난 이번 달 복직 예정이었다.
딱히 기간에 대한 의미는 없었다. 주변에는 육아휴직을 하고 대부분 다른 부서를 가거나 다시 임신을 하거나 퇴사를 했다. 그렇지 않고는 1년을 쉬고 회사에 다시 나왔다. 회사가 정한 2년 육아휴직을 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자들은 1년은 (어린 아기를 위한) 육아휴직. 1년은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초등 아이 휴직.이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후배들이 하나둘 못 견디고 퇴사 or 휴직을 하고 있는 H에게 남은 비장의 카드는 육아휴직이었다.
진급에 대한 욕망은 있지만 욕심이 없는 H는 늦은 회식을 마치고 들어오면 늘 중얼거렸다.
' 너도 회사 나가봐. 얼마나 아들이 보고 싶은지... 자고 있는 모습만 보고 일주일의 절반을 보내는 내 기분을 알기나 하니 '
늦은 시간까지 아이와 씨름을 한 난 단칼에 술자리 거절하고 아기와 놀아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사내규정상 자녀에게 부여된 육아휴직은 2년이며, 사내부부일 경우 그 2년을 함께 나눠 써야 한다.
나에게 육아 휴직은 온전히 '육아'에 맞춰 있었다.
사실, 임신을 하기 전 '출근하는 버스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의사 앞에서 쏟아냈었다.
입사 3년도 버틴 입사 5년 차의 위기인지 객기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의 파장은 결혼과 부서 전배로도 어떠한 간섭 없이 계속 잔잔하게 퍼지고 있었다.
의사는 내게 '휴직'을 권했고, H와 상의 후 하려던 찰나 임신을 했다.
때맞춰 프로젝트 팀으로 배치되고, 팀의 특성상 뭘 시작하기도 전. 부산스럽지만 누가 보기에도 한가한 그곳에서 여자 회사원이 임신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다 누리고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
그리고 육아를 위한 휴직 1년 1개월을 보냈다.
지난 3월부터 복직을 위한 아이 어린이집 보내기. 적응시키기. 하원 후 돌보미 찾기. 아이에게 매일 말해주기.
그리고 바쁘게 돌아갈 우리 가족의 변화에 대한 시뮬레이션 등등 바쁘고 어지러웠고 고단스러웠다.
-
그렇게 1개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린이집, 돌보미에 대한 불신이 온 나라에 적나라하게 고발되고 있을 무렵 불안을 부여잡고 애써 견디고 지내고 있을 무렵 격하게 복직을 반대하는 시부모님이 계셨다.
심리학을 공부하신 (+보태어 두 아들을 키우신 경험) 시어머니의 반대가 염려를 넘어선 설득과 회유 단계가 되었다.
세상 어떤 부모 아니 엄마가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고, 아하하 하겠냐고 설명을 드리면,
세상 어떤 부모보다 아기에게 큰 선물은 없다는 설교가 들렸다.
아직 시작도 안 한 나의 복직 후 현실 라이프는 당장 기상과 등원. 하원과 취침이었는데,
정서적 기준과 사례를 찬찬히 말씀하시는 시부모님 앞에서 '그럼 저 월급 주실 거예요?'라는 말이 혓바닥에서 머무는걸 내 앞니가 꾹꾹 막아내고 있었다.
-
그리하여 1개월의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당장 회사에 가면 부서 특성상 주말출근은 하루는 하게 될 것이고, 칼퇴근 보장은 불가하며, 아침 7시면 튀어 나가야 하는 부모를 둔 나의 아이는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될 것이다.
가뜩이나 잠이랑 늘 싸우는데, 저절로 잠과 늘 승리하겠지 라고 생각하니 그게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내 인생에서 앞으로의 9개월은 워킹맘으로서 치열하겠지만,
아이의 인생에서 9개월은 평생의 시작이며, 정서적 감정의 토대가 되겠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이에게 부모의 손이 필요한 건 당연한 거지만, 나중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게 맞는 것인가.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해 저축을 하는 나와는 달리 나중은 그때 생각하자며 현재나 잘하자 마인드인 H의 완벽하게 다른 가치관의 충돌이 어마어마했다.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내심 원했던 아빠 육아휴직은 H에게는 어느새 잊혀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회사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는 여전했고, 삭막한 사무실의 공기는 금세 익숙해졌다.
부서장은 짧은 면담에서 한창 바빠질 시기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시 휴직 연장의 이유를 물었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아기가 아직 너무 어리고, 제 손길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사무실을 나올 즈음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복직할 때 다시 임신했다고 하는 거 아니지?'
'둘째 생각 없습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엘리베이터를 문을 닫자마자 긴 한숨과 함께 이게 현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가정에게는 행복이고, 사회에게는 미래의 상징이지만 아이를 둔 직장여성에게는 휴직의 찬스라 여겨지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본 하늘이 너무 초록이었다.
얼마 전 아이가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내려오지 않고 가만히 한 곳을 지켜보기에 닿았던 내 시선에 들어왔던 건 초록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었다.
긴 시간 회사를 다니면서, 그동안 5월의 산뜻한 바람에 이 나뭇잎이 초록빛을 내며 흔들거리는 걸 단 한 번도 의식한 적 없었다.
나는 다시 긴 휴직에 들어선 직장인이다.
휴직자가 되어, 반복되는 육아에 짜증을 내고 후회를 하고 그렇게 투닥거리며 9개월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이를 위한 육아휴직과 함께 스스로를 위한 휴직에 욕심을 내 볼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하는 H의 응원과 포기, 준비가 안된 상태로 안절부절못하는 내 마음을 다잡고 다그쳐주신 시부모님의 조언, 오늘도 엄마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내 아이의 가르침, 늘 곁에서 무너지지 않게 안아주는 나의 부모님의 응원이 함께하는 9개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