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이야기
복직을 앞두고 필사적으로 아기와 함께 어딘가를 가려고 애썼다.
3월 어린이집 적응기를 겪기 전에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라고 쓰지만 사실은 내가 놀고 싶었고, 내가 쏘다니고 싶었다는 걸 마음 깊숙이 일러바치는 듯한 사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나게 제 두발로 걸어 다니던 아기는 빠밤 (푸쉬카)를 타고 다니기를 원한다.
빠밤이 없으면 두어 발자국 걷다가 삐딱이 서있다가 이내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와 두 팔을 벌린다.
' 안아주세요-'
H가 그랬단다.
발맞추어 걷다가 힘이 들면 '잠시 쉬었다 가요' 하며 어딘가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신혼 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애늙은이를 뒤집어쓴 어린 H가 생각나 귀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은 바지런했으면 좋았었을 텐데 한다.
나의 아기는 지금 개월 수의 아기들이 그렇듯 에너자이저+무한체력+만보기를 능가하는 부지런함을 갖추고 있지만 가끔 '안아주세요' 하면 H를 닮았나... (하고 조금 짜증이 난다랄까....)
아기 사진을 찍기가 얼마나 힘든지 내 사진첩이 리뷰해준다.
제대로 나를 보는 사진은 없고 다 제 곳 그래도 목적 있는 눈짓으로 어딘가를 본다.
가만히 걷다가 주저앉아 손가락을 가리켜 '뻐뻐' '우어'라고 뭐라 말하면 '응?'
엄마 손잡고 가자 하고 일어나다가도 앉아서 '뻐어어어'라고 말해 '응?'
척하면 착이라고 제 아이의 말을 기가 막히게 엄마들이 알아듣던데 난 아직 모르겠다.
무관심하고 무심한 엄마라고 자책하기에는 그래도 내가 이 구역에서 제일 잘 알아듣기 탑이니까 나름 자부심을 가져본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거나,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검지와 엄지로 똑바로 '조오기' 하면서 가리키는 동작을 할 때마다 늘 그랬었다.
'응?', '뭐봐?', '왜 그래?'
아이보다 두배 이상의 눈높이를 가진 나는 아무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데 두배 이상의 눈 아래에서 아기는 무언가를 말하고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는 길이 바빠 아기를 재촉해도 움직이지 않기에 안아볼 요량으로 앉았다. 그리고 보았다.
아기의 시선으로 본 세상의 화면은 짧았지만 반짝거렸고, 사소하지만 생소한 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른 조약돌들 사이로 졸졸졸 빛들이 구슬처럼 졸졸졸 앞으로 앞을 향해 이어 달려가고 있었고, 나의 아기는 그걸 보며 '빠아아 아'라고 말하며 계속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기의 눈높이가 되려면 168cm의 내 다리는 구부려 접어야 하고,
아기의 시선으로 보려면 늘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봐야 하며,
아기의 세상 속으로 난 시간을 멈추어야 한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해봤음직한 것들.
보지 않는데 자꾸 뭘 가리키고,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가자고 손을 이끌며, 별것 아닌데 유난히 집착하는 아기들의 특유의 고집을 겪어봤을 것이다.
아기의 생각이 자라고, 아기의 시선이 늘어나면서, 아기의 세상이 넓어진다.
그 세상에서 난 보기는커녕 어서 빨리 따라오라 재촉하고, '엄마 혼자 간다'며 아기의 발을 동동거리게 했었다.
'응?'이라고 하는 대답 대신에, '어디 어디?'
'뭐봐?'라는 물음 대신에, '오 정말?'
'왜 그래?' 질문인 듯 아닌듯한 대답 대신에, '엄마도 같이 볼까?'
엄마가 되는 건 매일 밤 아기를 재우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살이 좀 빠졌다고 한 사이즈 작게 옷을 살까 고민하는 것만큼 갈팡질팡이며
결혼을 한 게 잘못된 건지 남편을 잘못 고른 건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는 것만큼 복잡하다.
15개월. 나의 아기는 오늘도 예쁘고 반짝이는 세상에서 어떤 것을 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