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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Oct 22. 2018

11 무의식이 당신을 조종한다. 세 번째 이야기

너무 빨라 문제야.

앞서 뇌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무의식의 빠른 반응은 이와도 연관이 있다. 뇌가 상황 분석을 위해 에너지를 쓰며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일단 상황 자체에 집중하여 빠르게 반응해야 제한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길을 걷는데 맞은편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하자. 이때 뇌는 ‘왜 사람들이 저렇게 도망가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무리에 합류해서 같이 도망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래야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춰 빠르게 반응하다 보니 정확성을 희생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위험 상황이 아닌데도 위험신호를 마구 내보내게 된 것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공황장애, 과도한 불안증이 그러한 예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2018년 미국 LA 교외의 한 술집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 전직 해병대원이 마구잡이로 권총을 난사하여 12명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공포와 공격은 편도체와 많은 연관이 있는데 편도체를 자극하는 경로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대뇌의 전두엽을 거쳐 편도체로 가는 간접 경로가 있고, 두 번째는 바로 편도체로 들어가는 직접 경로가 있다. 이 두 번째 경로는 바로 가기 때문에 더 빨리 전달된다. 문제는 편도체가 너무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정말 두려워하거나 분노해야만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도 전에 낌새가 있으면 신체에 적색경보를 발령한다.


길을 걷다 ‘꽝’하는 큰 소리가 울렸다고 상상해보자. 대뇌의 전두엽은 모든 신경계를 통제한다. 만약 전두엽을 거쳐 편도체로 가는 간접 경로로 간다면, 대뇌는 편도체에게 ‘옆에서 들리는 소리는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야. 별게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하며 편도체를 진정시킬 것이다. 하지만 바로 가는 두 번째는 경로는 대뇌가 이러한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편도체를 흔들어 깨웠다. 큰 소리는 옛날 지진을 경험했던 때를 상기시키고 당사자는 진정할 틈도 없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된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별거 아니야. 편안하게 하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지만, 무대를 상상하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손에는 땀이 나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몸은 뻣뻣하게 경직된다. 전두엽이 편도체에게 비상상황이 아니고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려 하지만 이미 편도체는 흥분 상태에 빠져버렸다.




사실 전두엽과 편도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편도체가 전두엽에 주는 영향이 더 강하다. 마치 편도체에서 전두엽으로 가는 길은 4차선 고속도로이고, 전두엽에서 편도체로 가는 길은 1차선 국도인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이 감정을 조절하기는 어렵지만 감정은 이성을 쉽게 지배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다른 곳으로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 흥분 상태를 벗어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간단한 예는 자기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방법이 있다. 깊게 들이마실 때 들어가는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고, 천천히 내쉬면서 나가는 공기의 흐름에 집중하는 식이다. 다른 방법은 내가 해야 할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경우, 발표하는 상황보다는 발표해야 하는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발표 내용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는 의식적으로 페달을 밟거나 운전대를 꼭 쥐고 있기 때문에 대뇌 앞부위에 위치한 전두엽이 활발히 작동한다. 또한 이러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소뇌 역시 많은 일을 한다. 이 때는 뇌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뿐 만 아니고 뇌의 여러 부위에서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일단 동작이 익숙해지면, 전두엽이나 소뇌보다는 뇌 깊숙이 위치한 기저핵이라는 부위가 주로 관여하게 된다. 신경은 새로운 연결을 단단히 형성하게 되고,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가 되면서 의식이 인지하지 못하는 곳으로 사라진다. 이 상황이 되면 뇌의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고, 더 빠르고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다. 더 중요한 다른 일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새로 형성된 신경 연결은 견고하고 안정적인 신경회로가 되면서, 특별한 지각 없이도 신속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게 된다.


일단 새로 형성된 신경회로가 하드웨어가 되어 의식 아래로 모습을 감추면,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난주 일요일 점심때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신경회로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달 뒤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지난 점심과 관련된 기억의 신경 연결이 끊긴 상태이다. 중학교 수학 시간 때 배운 ‘근의 공식’이 아직도 생각난다면, 근의 공식과 관련된 신경 회로가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신경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서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가 되어 의식 아래로 가라앉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많은 반복과 연습이 필요하다. 야구 선수가 밤낮없이 스윙 연습을 하여 최적의 스윙 동작을 몸에 배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어느 타자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슬럼프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석에 들어서면 생각을 안 하려고 합니다' 이는 뇌과학적으로 좋은 방법이다. 연습을 통해 만들어진 무의식에서 나오는 동작을 의식적으로 자각한다면 최적의 스윙 동작이 안 나올 수 있다.


대뇌 전두엽을 통해 의식이 관여하게 되면 이미 형성된 신경 회로에 불필요한 명령이 전달되고 오히려 정교한 스윙을 방해하게 된다. 의식적 자각은 동작을 방해할 뿐 만 아니라 전두엽의 정보를 처리하는 동안 속도도 느려지게 한다.


의식적 사고는 창의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한 실험에서 자동차에 다는 자전거 거치대 디자인을 설계했다. 한 집단은 기존의 단점을 미리 보고 설계했고, 다른 집단은 그런 정보 없이 설계했다. 단점을 보지 않고 설계한 집단이 창의성이나 독창성에서 더 우수한 점수를 얻었다. 단점에 대한 의식적 사고가 창의력을 가로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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