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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Oct 19. 2018

10 무의식이 당신을 조종한다. 두 번째 이야기

내 안의 최고 가성비: 무의식

눈으로 보이는 색, 귀로 들리는 소리, 코로 맡는 냄새, 입으로 느껴지는 맛, 피부를 통한 촉각, 근육과 관절의 위치를 알려주는 감각 정보들이 매 초마다 실로 어마어마하게 뇌로 들어온다. 문제는 ‘의식적’ 뇌는 이를 모두 처리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간, 근육, 지방세포와 같은 조직과는 달리 뇌에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따라서 혈액으로 공급되는 에너지만큼 만 이용하여야 한다. 


뇌는 할 일이 많지만 공급되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뇌는 최대의 효율성을 지니는 전략을 선택했다. 실제로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슈퍼컴퓨터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그 이상의 일을 해내는 인간의 뇌는 냉장고 전구 전력의 1/3 정도만 소비한다. 


컵 쌓기 대회 챔피언과 당신이 컵 쌓기 시합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당연히 챔피언의 승리를 예상할 것이다. 또한 컵 쌓기 동안 그의 뇌는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더 격렬히 활동할 것이라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의 실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컵을 쌓는 동안 뇌파검사를 해보니 컵 쌓기 대회 챔피언의 뇌는 알파파 구역에서 주로 활동했고, 일반인의 뇌는 베타파 구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알파파는 주로 명상과 같이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나타나고, 베타파는 불안, 흥분, 긴장 상태처럼 뇌가 활발히 활동할 때 나타난다. 챔피언의 뇌는 컵 쌓기를 하는 동안 일반인의 뇌와 달리 더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였고, 일반인의 뇌는 더 복잡스럽고 어수선하게 일한 셈이다. 


우리 모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다. 처음 자전거나 운전을 배울 때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핸들을 단단히 잡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최대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주변의 모든 물체에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핸들을 잡는 손에 신경을 쓰거나 의식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전방을 집중해서 응시하지도 않는다. 


운전도 처음에는 긴장해서 운전석을 바짝 당겨 앉아 모든 주의집중을 기울이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한다. 컵 쌓기도 마찬가지다. 연습을 통해 컵 쌓는 동작이 손에 익숙해지면,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의식적으로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뇌에는 상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동 제어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의식이다. 자전거 타기를 처음 배울 때는 의식이 주도하고, 이후 익숙해지면 무의식이 주도한다. 뇌 영역으로 보면, 처음 배울 때는 소뇌와 전두엽의 일차운동피질이 주로 활성화되고, 이후 익숙해지면 기저핵의 선조체가 주동적인 역할을 한다. 무의식은 결정의 순간에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해 준다. 따라서 뇌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이는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인간에게 무의식이 필요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무의식은 빠르게 반응한다. 이런 빠른 반응은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뇌의 궁극적 목표는 생존이다. 의식적 사고 과정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신경세포들 간의 상호작용을 요구하며 시간도 많이 소비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시간 소비는 자칫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재빠르게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깊은 산속으로 캠핑을 떠났다고 상상해보자. 외국에는 덩치 큰 야생 곰이 많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저 쪽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이럴 때는 신속함이 생사를 가를 수 있다. 신경과학자 딘 버넷은 그의 저서 ‘뇌 이야기'에서 이에 대해, ‘저것이 무엇인지 좀 더 기다려보자’라는 자세보다는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도망가자!’라는 자세를 갖춰야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딘 버넷


신속하게 반응하기 위해 인간은 잠재적인 두려움에 대한 본능적 감지 능력도 가지고 있다. 일본 나고야 대학의 노부야키 카와이 연구팀은 여러 동물들의 사진을 가지고 낮은 해상도에서부터 높은 해상도까지 20단계로 만들어, 차츰 해상도를 높여가며 사람이 언제 인지 할 수 있는지를 평가했다. 고양이나 새 같이 무해한 동물의 경우는 10단계 혹은 그 이상에서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뱀은 8단계에서 90퍼센트의 정확도로 인지했다. 이는 과거 인류의 조상에게 뱀은 위협적인 동물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이를 빨리 알아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실험도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6달이 된 아기 48명을 대상으로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던 아기들이 뱀을 보자 눈동자가 커지는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다. 이는 뱀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간도 본능적으로 뱀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능적 두려움에 대한 침팬지 실험도 있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뱀을 무서워하도록 훈련시켰다. 그러자 실험 대상 침팬지가 뱀을 무서워하는 광경을 본 다른 침팬지들도 뱀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꽃을 무서워하게 훈련시키면 이 광경을 보는 다른 침팬지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뱀에게는 공포심을 느꼈지만, 꽃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본능적 두려움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DNA에 새겨졌고, 위험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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