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밥 익는 냄새
두정엽은 몸으로 느끼는 감각을 인지한다. 발로 지압판을 밟거나 손에 쥔 스마트폰이 진동하면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연인의 맞잡은 손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두정엽 덕분이다. 통증도 두정엽을 통해 느낀다. 만원 버스에서 ‘누군가 내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을 밝았구나’ 알 수 있는 것도 두정엽 덕분이다. 이처럼 두정엽은 진동, 압력, 피부의 당겨짐, 통증, 온도와 같은 신체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인식한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두정엽이 담당하는 중요한 감각이 있다. 바로 고유감각이란 것이다. 고유감각은 내 몸의 위치를 알려주는 감각이다. 이를 통해 굳이 발가락을 보지 않고도 발가락을 구부리고 있는지, 쭉 펴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눈을 감고 가위, 바위, 보를 해도 무엇을 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내 몸을 나 자신 고유의 것으로 인식하게 해 주기에 고유감각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수도 있다.
무난한 일상생활을 위해서는 고유감각의 역할이 중요하다. 초기 신체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 동작이 이루어지기에 때문에 뇌는 항상 자신의 신체 각 부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테니스 경기에서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맞받아쳐서 원하는 위치로 보내려면 손이 앞에 있는지, 등 뒤에 있는지에 따라 스윙 동작이 달라지게 된다. 야구 경기에서 날아오는 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두정엽이 실시간으로 각 관절의 위치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정교한 동작을 위해서는 두정엽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두정엽 이상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는 부위가 나중에 언급할 소뇌이다. 고유감각은 두정엽뿐 만 아니라 소뇌에도 정보를 제공한다.
두정엽 앞에는 전두엽이 있다. 뒤로는 후두엽, 아래로는 측두엽이 위치한다. 이처럼 두정엽은 다른 엽들과 서로 이웃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엽들로부터 오는 정보를 모아서 통합하는 역할도 한다. 후두엽의 시각 정보, 측두엽의 청각 정보, 두정엽의 몸통 감각 정보를 통합하고, 이를 뇌의 CEO인 전두엽으로 전달해준다. 아인슈타인 뇌에서 두정엽의 일부분이 일반인에 비해 15퍼센트 정도 크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측두엽은 귀로 듣는 소리의 의미를 파악한다. 상대방이 말을 하면 공기가 요동치고 이러한 파장은 고막을 울려 달팽이관의 신경 세포를 자극해서 뇌로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면 측두엽에서 소리를 해석한다. 측두엽으로 인해 퇴근길에 사과를 사 오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바나나가 아닌 사과를 사갈 수 있고, 스무고개 놀이에서 상대방이 원하는 답을 맞힐 수가 있다.
대뇌의 가장 안쪽에는 변연계라는 부위가 있다. 이곳은 경험한 일에 대한 정서적 색깔을 입힌다. 이를 테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 후 느끼는 즐거움이나 불쾌함,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 불쑥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긴장하는 것, 내일까지 과제나 보고서를 끝내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것 모두 변연계가 주도한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도 변연계의 활동 덕분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의 저변에는 변연계가 자리 잡고 있다.
감정이라는 느낌은 생존이라는 절대 과제에 있어서 강력한 기준이 된다. 감정에는 슬픔, 혐오, 분노, 놀람, 공포와 같은 부정적 감정과 기쁨과 같은 긍정적 감정이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공포라는 부정적 감정은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생명 위협과 직접적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포를 느끼면 신체는 변화한다. 신경이 곤두서고, 호흡은 거칠어지며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손에는 땀이 나고, 장운동은 감소한다. 이처럼 변연계는 감정적 변화에 맞춰 신체의 반응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중심에는 변연계의 일부인 편도체가 있다.
뇌는 또한 위험한 순간을 잘 기억해 둬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유사한 상황이 오면 참고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정서적 처리를 담당하는 변연계에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위치하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내일 할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것은 해마의 뇌세포 덕분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영원하지 않다. 하루 지나서 잊어버릴 수도 있고, 수년 후에 잊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새로운 기억이 매일 생겨난다. 해마에 존재하는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우리는 망각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억을 얻기도 한다. 여기서 해마의 변화무쌍한 환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스웨덴의 요나스 프리센 박사는 해마 뇌세포의 나이가 모두 다르고, 1,400개의 신경세포가 매일 생겨난다고 밝혀냈다.
후각 시스템도 변연계의 일부이다. 후각은 감각 기관 중에서 가장 먼저 진화한 부위로 알려져 있다. 진화 초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생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원초적 기능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동물이 포식자의 냄새를 감지하고 도망가거나 페로몬 향을 이용해 짝짓기를 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도 무의식적으로 배란기 여성을 후각을 이용해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후각 신경 세포의 가장 큰 특징은 해마의 신경 세포와 더불어 재생 가능한 신경 세포라는 점이다. 이는 후각 신경 세포가 외부 환경에 직접 노출되어 손상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2004년 노벨상 수상자인 벅과 액셀은 인간 유전체의 3퍼센트가 후각 수용체와 관련이 있다고 밝혀냈다.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변연계에는 해마와 후각 기관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변연계는 경험을 기억하여 감정과 결부시키고, 후각을 처리한다. 해부학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긴밀하게 정보 교환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의 위치가 너무 가까이 있어 초기 해부학자들은 기억 시스템이 냄새를 담당한다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냄새는 다른 감각보다 더 강렬한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냄새도 내게는 편안한 혹은 불쾌한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 밥 익는 냄새는 어릴 적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즐겁게 식사했던 때를 생각나게 하며 그때의 추억과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 또한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생선을 보는 것보다 생선 비린내가 더 크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1950~60년대에 미국의 심리학자 폴 맥린은 뇌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세 개의 부위로 나누었다. 이를 ‘뇌 삼위일체론’이라고 한다. 이들 세 부위는 뇌줄기, 변연계, 신피질이다. 뇌줄기는 심장 박동, 호흡 유지와 같은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가장 원초적인 일을 담당하고 진화 과정의 초기에 등장하였기에 ‘파충류의 뇌’라고 불린다. 뇌줄기 위에는 변연계라는 부위가 있다. 변연계는 감정처리, 기억을 담당하고 포유류에도 존재하기에 ‘포유류의 뇌’ 또는 ‘오래된 뇌’라고 한다. 변연계 위에는 신피질이라는 부위가 있다. 신피질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는 뇌이다.
전두엽은 신피질의 대표적 부위이다. 이 부위는 고차원적인 인지와 사고를 가능하게 해 주며 가장 나중에 진화하였다. 전두엽은 이성적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변연계는 감정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합리적 생각과 행동을 위해서는 전두엽이 변연계를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 전두엽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면 변연계 주도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뇌졸중을 앓는 사람의 60퍼센트가 1년 이내에 우울증을 경험한다는 연구는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변연계는 항상 통제 대상이 아니다.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감정이다. 사랑이나 열정, 의욕과 같은 감정적 동기 부여 없이는 논리적 사고, 판단, 계획, 실행과 같은 대뇌의 고차원적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결국 변연계의 도움 없이는 신피질은 반쪽짜리 뇌로 전락하고 마는 셈이다.
소뇌는 후두엽 아래, 뇌줄기 뒤쪽에 위치한다. 생명 출현 초기 단계부터 생겨났으며, 생물학적 하등 동물도 가지고 있다. 어류의 옆줄이 인간의 소뇌에 해당한다. 소뇌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되었다는 사실은 생명 유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뇌에서 소뇌의 부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전체 신경 세포의 절반이 소뇌에 몰려 있다. 실제로 소뇌는 여러 일을 담당한다. 균형 감각은 소뇌의 대표적인 기능이다. 실생활에서 이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알코올은 소뇌의 대사 작용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술 취한 사람이 좌우로 비틀거린다면 저 사람의 소뇌가 정상 상태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균형을 유지하려면 시선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내 몸을 내 의도대로 움직이려는 의미고,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시선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뇌는 눈동자 움직임 조절에도 관여한다. 이뿐 만이 아니다. 소뇌는 정교한 동작이 이루어지도록 근육의 세밀한 움직임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 이를테면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잔으로 손을 뻗는 다고 상상해보자. 손으로 컵을 움켜잡기 위해서는 컵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만큼만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야 한다. 너무 많이 움직이면 손이 컵을 지나칠 것이고, 너무 적게 움직이면 손이 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소뇌는 각 관절의 실시간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초기 손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근육에 전달되는 명령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지,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지, 펴고 있는지에 따라 어떤 근육을 얼마만큼 움직이라는 명령이 달라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감각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고유감각이다.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의 관절과 근육이 얼마나 늘어났거나 줄어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고유감각이 실시간으로 소뇌에 알려주는 덕분에, 소뇌는 신체 각 부위의 위치에 관한 정보를 항상 인지하고 있다.
소뇌는 신체의 물리적 상태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데이터를 대뇌에 알려준다. 그러면 대뇌는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깨, 팔꿈치, 손목, 손가락 관절을 얼마만큼 움직이라는 명령을 근육에 내린다. 대뇌는 근육에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같은 정보를 다시 소뇌에 제공한다. 대뇌는 소뇌에게 ‘나는 이런 명령을 근육에게 내렸어’라고 보고하는 셈이다. 덕분에 소뇌는 매 순간 관절이나 근육 상태에 대한 정보뿐 만 아니라 대뇌에서 어떤 명령이 내려졌는지도 알고 있다. 소뇌는 이 두 가지 정보를 비교하여 앞으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날지를 예측한다.
이러한 예측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 만약 팔의 움직임이 크다면, 이러한 예측이 있어야 현재 이대로 팔을 뻗다가는 커피잔을 지나칠 것이라는 경보를 대뇌에 울릴 수 있다. 그러면 대뇌는 근육에 다시 명령을 내려 동작을 수정하여 마침내 원하는 동작을 이룰 수 있다. 한 예로 소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커피잔을 한 번에 쥐지 못하고 손이 떨리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에서는 '활동 떨림'이라고 한다.
인간의 소뇌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큰 것으로 봐서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소뇌와 연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신경학자들은 인간의 움직임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동작에 대한 예측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소뇌로부터 사고 능력이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소뇌는 전전두엽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한다. 정교한 신체 움직임이 이루어지도록 조절하듯 사고나 생각의 흐름이 원활하고 부드럽게 이어지도록 조절한다. 그래서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생각이 느려지거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생각을 못 하게 된다. 심하면 학습장애도 일으킨다. 자폐아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들에게서 소뇌 기능 저하를 흔히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