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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범 Apr 04. 2020

22 문명의 비밀: 신경가소성. 세 번째 이야기

낯선 소리가 들린 직후에 사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봤다면?

신경가소성은 인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도왔다. 알래스카로 가던, 열대 밀림으로 가던 그곳의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이로 인해 새로운 기억이 생기기도 하고, 망각하기도 한다. 또한 성격이나 취향이 변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적 성향도 바뀔 수 있다.


신경가소성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운동 실력이 향상되거나 건강이 좋아지기도 하며, 성격이 좋게 변하기도 한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신경가소성은 통증과도 연관이 많다. 예를 들면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뇌에서 신체 지도가 재배열되고, 이 과정에서 촉각 경로가 통증 영역으로 연결된다면, 부드럽게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통증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운동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혹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해서 뇌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방법이 있다.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이 하는 것보다는 같은 양을 나눠서 하는 것이 뇌를 더욱 잘 변화시킨다. 노벨상을 수상한 에릭 캔델의 동물 연구에서 연속해서 40회 자극을 가하면 신경가소성이 단지 하루 동안만 지속되었지만, 하루에 10회씩 자극을 가하면 몇 주 동안 지속되었다.


즉 단시간의 집중적인 자극보다는 같은 양을 나눠서 꾸준히 하는 것이 신경가소성을 유지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수영의 팔 돌리기 연습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그 양을 나눠서 매일 하는 것이 좋은 수영 자세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즐기는 것이 목적이라면 지칠 때까지 해야겠지만, 실력 향상을 목표로 둔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신경가소성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난다. 몇 달 또는 며칠이 걸리기도 하지만, 몇 초 만에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이러한 현상을 경험한다. 다른 곳으로 돈을 이체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계좌이체를 하기 위해서 계좌번호를 잠시 외워야 한다. 이때 신경가소성이 일어난다. 계좌번호를 외우는 동안 뉴런 간의 정보 전달 패턴이 변한다.


랄프 시겔은 10개 또는 100개 단위의 신경세포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동기화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기법을 발명했다. 이 기법을 통해 원숭이가 다른 감각 정보를 학습하거나 적응했을 때 단 몇 초 만에 신경세포 연결망이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만약 같은 계좌로 매일 이체를 한다면 어느 순간 번호를 외우게 되고 더 이상 계좌번호를 확인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순간 뇌 속 뉴런의 축삭 말단과 수상돌기는 더 많아지고 시냅스가 강화되면서 결국 시냅스 구조가 물리적으로 변화한다. 이것이 ‘기억’이다. 이러한 물리적 변화가 지속된다면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그 계좌번호를 잊지 않게 된다.


더 이상 늦잠을 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알람을 맞춘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지만, 이내 알람 소리에 익숙해지면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다. 이것도 신경가소성 때문이다.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뇌신경의 회로는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강화되는 것을 민감화라 하고, 약화되는 것을 습관화라 한다. 생존에 있어서 민감화나 습관화는 모두 중요하다. 초기 인류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외부 신호에 집중해야 했다. 아프리카 초원에 홀로 떨어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저 멀리에서 낯선 동물 울음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동공이 확장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지만, 그 소리가 여러 번 반복되는 동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내 그 소리를 무시하게 되고 더 이상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습관화이다. 습관화는 불필요한 반응을 억제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소리가 들린 직후에 사자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봤다면?


정신은 혼미해지겠지만 뇌는 그 소리를 각인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같은 소리를 다시 듣게 되면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요동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도망갈 자세를 취한다. 이것이 민감화이다. 민감화는 중요한 자극에 재빨리 반응하게 해 준다. 중요하지 않은 자극을 무시하는 것은 습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중요한 자극에 더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민감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민감화나 습관화는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습관화가 생겨야 할 곳에 민감화가 생기면, 평범한 자극이나 소리에도 지나치게 놀라거나 공포에 떨게 된다. 지진으로 공포에 떨었거나 폭력을 당한 끔찍한 경험이 있으면, 이후에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지나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정, 학교, 회사에서 지나친 비난이나 처벌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후에는 누가 건네는 가벼운 농담에도 과도하게 움츠려 들거나 격하게 반응을 보인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민감화는 더 심각해진다. 반면에 민감화가 일어나야 하는 곳에 습관화가 일어난다면 집중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아침에 더 이상 알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이제 알람 소리를 바꿔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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