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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날카로울까?

나는 다정하지 못한 아내이자 엄마다.

by 이지애

“당신한테 바라는 건 딱 하나야.
따뜻한 말 한마디.”


남편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순간마다 마음이 움찔한다.
왜냐면 그게,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니까.


아이를 낳기 전, 나는 그렇게 날카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내 안의 뾰족함은 늘 있었지만, 주로 불친절의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엄마, 왜 그렇게 말해?” 하면서도 정작 나는 더 매섭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회사 다니고 그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것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러다 육아가 시작되고, 커리어가 멈추면서 삶이 고단해졌을 때,
내 불친절함은 정점을 찍었다.
아이의 칭얼거림, 남편의 한마디, 심지어는 누군가의 스킨십조차 거슬렸다.
내 기분이 우선이었고, 작은 간섭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그럴수록 내 말투는 뾰족해졌다.



나는 HSP다.
(Highly Sensitive Person, 흔히 말하는 예민 보스.)
작은 소리, 작은 표정, 작은 늬앙스도 기가막히게 알아내고 반응한다.
다정함을 갖추기엔 최악의 기질이라고 스스로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이정도면 내 DNA에는 불친절 유전자가 새겨져 있는 거 아냐?' 싶을만큼.


그런데 참 이상하다.

주변 지인들에게는 나는 꽤 다정하다.
경청하고 끝없는 질문에도 최대한 다정하게 답하곤 한다.

물론 시가 식구들에게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아이와 남편 앞에만 서면 내 말투는 금세 날이 선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정서적 안전지대’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은 가장 안전한 관계 앞에서 억눌렀던 감정을 가장 쉽게 풀어낸다.


뇌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스트레스 상황이 닥치면,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보다
위험을 감지하는 편도체가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는 이성이 잠시 멈추고, 감정이 먼저 터져 나온다.
쉽게 말하면, 밖에서는 참다가 집에 와서 폭발하는 구조다.



명상을 공부하다보니 편안전활이라는 말이 있다.

편도체는 진정시키고, 전두엽은 더 깨어있게 만든다는 뜻이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명상도 실제 요가원에서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그때 뿐 유지할 수 없었다.



알고 보면 내 불친절함은 성격 문제가 아니라
습관과 뇌의 자동 반응에 가까운 셈이다.
그러니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오늘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불친절한 아내이자 엄마다.
하지만 동시에, 다정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불친절한 나를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다정으로 가는 첫 번째 연습이라고 믿기로 했다.


다음 글에서는, 스스로에게도 불친절했던 내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가장 가까운 타인인 ‘나’에게 어떻게 말했는지, 그 민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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