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신인 연기자들을 보면 연기가 어색해서 극 중 몰입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어떤 신인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연기가 늘기도 합니다. 처음의 어색함을 극복하고 나면, 배역에 몰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진심이 담기며 자연스러워집니다. 나중엔 상도 받게 되죠. 삶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과를 얻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임파워링_Empowering
상담자는 내담자를 뜯어고쳐주는 수리공이 아닙니다. 내담자를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담실에서는 문제라는 말보다는 이슈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문제라는 단어에는 이미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환자_Patient라는 단어 대신 클라이언트_Client 혹은 내담자_Counselee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와 인생의 일정 걸음을 같이 걸어가 드립니다. 때론 여행지의 가이드 같습니다. 그리곤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힘을 넣어드립니다. 이것을 권위와 힘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임파워링_Empowering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 대신에 내담자에게 용기와 의지, 동기와 대응무기를 들려드립니다. 이것이 좋은 상담자입니다. 내담자분들은 상담자의 임파워링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연습을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작은 결과물들을 얻게 됩니다. 그 후엔 앞으로 일어날 갈등도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 점차 자신의 삶에 권위와 힘을 회복합니다. 멋진 일입니다. 이렇게 되면 안심하고 상담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무기력에 사로잡힌 나는 마치 감옥에 있는 듯했어요
학습된 무기력
그러나 오랜 시간 무기력하게 지낸 분들에겐 힘을 넣는 작업이 쉽지 않습니다. 긍정 심리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만은 이런 상황을 학습된 무기력_Learned helplessness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1972년에 개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실행했던 전기 자극 실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한 그룹의 개들에겐 아무런 자극을 주지 않고 일정 시간 뒤에 풀어줬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개들에겐 스스로 스위치를 누르면 바닥의 시작된 전기 자극이 멈추게 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의 개들에겐 전기 자극이 들어왔을 때 자기들이 멈출 수 없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곤 이 개들을 한 마리씩 특별하게 준비된 실험 상자(Shuttle box)에 넣었습니다. 전기 자극이 들어오는 공간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얕은 칸막이로 나눠져 있는 장치입니다. 넘어가기만 하면 고통을 피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무런 자극을 경험하지 않았던 개들은 자극이 들어오자 조금 참다가 전부 그 칸막이를 넘어갔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개들도 몇몇을 제외하곤 다 자극이 없는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룹의 개들은 실험이 반복될수록 더 빨리 옆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반면, 세 번째 그룹의 개들은 전기자극이 와도 그 자리에서 그냥 머물렀습니다. 고통스러운 자극이 멈춰질 때까지 울고, 낑낑거리고, 짖고, 오줌을 싸기도 했습니다. 얕은 칸막이를 넘어가면 고통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고통, 스트레스, 우울증 등과 대응하는 사람의 수동성 및 무기력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작은 감옥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마치 작은 감옥에 갇혀 있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역기능적인 가정환경에서 부모에게 칭찬 한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빌어먹을 놈', '널 왜 낳아서', '저것도 자식이라고', '네가 잘하는 게 뭐가 있니', '누구 집 자식은 이런다던데', '네 언니/오빠 반만 따라가라' 등 부정적 메시지들을 쓸어 담아야 했습니다. 괜찮다는 말, 용서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차라리 혼났던 것이 관심을 받고 좋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부모의 무관심이 일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연두부 같이 여린 마음의 상자는 다 부서졌습니다. 그 후엔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치며 실패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관계는 무너졌습니다. 이젠 '나는 결핍이 있는 존재', '나는 해낼 수 없는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이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그 안에 갇혔고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점점 스스로를 비하하는 말이 많아집니다. 동기가 사라져 갑니다. 애쓰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매일 해야 하는 일상을 시작하기도, 끝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자꾸 미루게 됩니다. 스스로가 불쌍하고 때론 비참합니다.
작은 변화들
그렇게 지내다 용기를 내어 다른 모습과 행동을 시작한다는 것. 그 일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화내는 대신 안아주는 것, 잔소리 대신 부탁으로 표현하는 것, 칭찬을 '아니에요' 대신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받는 것, 조금 더 당당하게 눈을 보고 대화하는 것, 삐지기 대신 '나도 먹고 싶었어' 말하는 것, 자는 아이 쓰다듬기 대신 깨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팔자타령 대신에 감사의 제목을 적어보는 것,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지 않고 '나도 너무 슬퍼'라고 말하는 것, 빈정거리는 대신 '나도 상처 받기 싫어'라고 말하는 것, 아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 딸과 커플링 커플 목걸이를 제안하는 것, 나 때문인가 눈치를 살피는 대신 용기 내어 물어보는 것, 맛있는 요리를 해서 식구들 안 주고 혼자 먹어보는 것, 일주일은 집안일을 완전히 휴무하는 것, 내 공부를 위해 돈을 모으길 시작하는 것, '한 번만 더 그러면 다 못하게 한다'라며 규칙을 만들어 협박하는 대신 '이제 믿을게', '용서할게'라고 말하는 것, 스스로 '바보', '멍청이'라고 말하는 대신 '이 정도면 괜찮아', '수고했어'라고 격려하는 것, '이러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는 대신 '이러면 이렇게 하면 되겠다'하고 계획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것, 남을 위한 따뜻한 계획을 잡고 하나씩 실천하는 것, 반복되는 돈 이야기를 참고 의미 이야기를 해보는 것, 습관적인 '망했다 다 끝났다'를 참아보는 것, 먼저, '미안해', '내 잘못이야'라고 말해보는 것. 무엇 때문에 혹은 너 때문에 라는 비난을 멈추고 스스로 책임질 것을 찾아보는 것. '이제 너무 부담스러워'라고 말하며 책임을 내려놓는 것...
자신의 이슈에 따라 다양한 시작이 존재합니다. 이런 일들을 시작하는 순간은 무조건 박수를 쳐드려야 합니다. 저에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할 만큼 감동의 순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내담자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드립니다. 그 시작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저에겐 특별한 선물입니다. 참 소중합니다. 그러니 애써서 결심하고 작은 변화를 시작하신 여러분께도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주저앉히는 장애물
이제 그다음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시작도 힘들지만 다음의 과정 준비도 잊어선 안됩니다. 또 작심삼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다음 과정을 장애물 찾기라고 부릅니다. 겨우 마음을 먹은 것도 억울한데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합니다. 장애물 때문입니다. 가능한 장애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안타깝게도 스스로 갇혀 지내던 분들은 무엇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가 당당한 모습인지, 좋은 엄마는 어떤 건지, 좋은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진 그림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되는 건지, 이렇게 다가가면 되는 건지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이 없으니 자꾸 움츠러들게 됩니다. 머리에도 가슴에도 부적절감이 가득합니다.
둘째, 사람들의 반응이 걱정됩니다. 시작은 겨우 했는데, 머릿속은 너무 복잡합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이러면 어떡하지"가 쉼 없이 이어집니다. 먼저는 내 의도에 대해서 오해를 받을까 봐 염려가 됩니다. 나는 정말 순수하게 잘해보려고 하는 것인데,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거절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불편합니다. 내가 꾹꾹 참아가며 변화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이 퉁명스럽게 외면당한다면 너무 수치스러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론 아무도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잘해보려고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은 못 견딜 일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앞서지만 표현이 뒤따르질 못합니다.
셋째, 속에서 부글거립니다. 많은 분들은 "내가 달라지려고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잖아"라고 말하며, 인정받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네가 뭘 그렇게 애썼는데"하거나 "왜 이제 와서 노력하는 척이야"라고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 속에서는 정말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올라옵니다. 이를 내적 저항이라고 부릅니다. 이 내적 저항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존심입니다. '어떻게 네가 (감히) 나에게'라는 생각이 노력의 의지를 꺾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피해의식입니다. '내가 당했는데, 내가 아팠는데, 왜 내가 노력을 해야 하지?'라는 생각입니다. 너무 맞는 이야기입니다. 많이 억울합니다. 그리고 화도 납니다.
넷째, 스스로도 너무 어색합니다. 이것이 제일 큰 장애물입니다. 안 해본 걸 하려고 하니 참 곤혹스럽습니다. 결심도 했고, 의지도 내어봅니다. 그런데 이 어색함, 쑥스러움에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손을 뻗어 잡고 싶은데 안됩니다. 안아주고 싶은데 너무 어색합니다. 멋있게, 예쁘게 꾸미는 것도 얼마나 어색한지 모릅니다. 나만 어색하면 어떻게 참아보겠지만, 나의 달라진 모습을 대하는 사람들도 너무 어색해합니다. 이 피할 수 없는 어색함 때문에 그냥 포기해 버리고 싶습니다. 아니 포기한 적도 많을 겁니다.
어색함을 극복하기
물론 우리가 시작한 모습은 아직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어색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야 표정과 온몸에 들어갔던 긴장이 빠지며 자연스러워집니다. 점점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나의 삶과 인격과 성격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그 어색함을 견디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잘못된 믿음 깨기
불편함, 갈등, 스트레스 등에 대응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심겨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 그 본능적 능력을 빼앗아 갈 수도 없습니다. 그 능력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그 능력이 있는지를 잊었거나, 발휘하지 못하도록 길들여졌을 뿐입니다. 앞서 말한 실험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실은 오히려 나는 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랍니다: "너는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할 수 없다고 믿도록 길들여졌어." 길들여졌음에 억울하다면 이제 벗어날 때입니다.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내 안에 왜곡되어 있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습니다.
행동의 법칙에 눈을 뜨기
결심한 행동을 지속하려면, 동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동기가 생겨야 행동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만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에겐 삶의 동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분들에겐 동기보다 행동이 먼저 필요합니다. 낫고 싶은 마음이 없어도 무기력을 딛고 신발장 앞까지 걸어 나가 신발을 신어보는 행동부터 강화해야 합니다. 그럼 그 작은 행동의 성취가 좀 더 큰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곧 회복의 동기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족한 동기는 주저앉을 핑곗거리를 만듭니다. 그러나 이제는 먼저 행동을 시작하고 반복하길 바랍니다. 곧 지속하게 만드는 동기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시작점을 만들기
너무 어색할 때는 차라리 결심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이제 좋은 엄마가 되기로 했어", "이제 당신이랑 잘 지내보려고", "이제 당당하게 살 거야", "나도 이제부터 행복을 찾아볼 거야"라는 결심을 먼저 나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외로 나를 향한 응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응원하는 것은 아닐 수 있겠죠. 그래도 먼저 말을 꺼냈으니, 돌덩이 하나 내려놓은 듯 후련할 수 있겠죠. 이렇게 멋진 시작점이 만들어졌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면 정말 큰 계단을 오른 것입니다.
"-인 척하기" 기법 시도하기
상담의 기법 중에 '- 인척 하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담자에게 현재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질문합니다. 제일 자신감이 있다면, 세상 최고의 따뜻한 엄마라면, 침착하고 안정된 사람이라면, 남의 시선을 하나도 인식 안 하는 상태라면, 하나도 불안하지 않고 안정적인 마음을 가졌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보기, 그렇게 눈을 떠보기, 그렇게 자세를 가져보기 등을 연습시켜드립니다. 그리곤 딱 일주일만 마치 그런 사람인 것처럼 지낼 것을 숙제로 드립니다. 그리곤 다시 일주일을 숙제로 드립니다. 반복하다 보면 효과가 제법 큽니다. '-인척 하기'는 연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직 내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안 어울리는 옷도 자꾸 입으면 자세가 바뀌며 옷태가 날 수 있겠죠. 그렇듯 내 것이 아닌 연기라도 그것이 반복되면 삶에 스며들 수 있습니다. 제가 내담자 분들께 나눠드리는 말을 여러분께도 드립니다: "연기라도 하셔야 해요. 진심이 담길 때까지요."
자신만의 별점 기준을 준비하기
또 주저앉지 않으려면, 타인의 평가에서 좀 벗어나야 합니다. 그들의 반응으로 나의 행동에 점수가 매겨진다면 또 실망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미리 스스로의 평점 기준을 준비하기로 합시다. 다섯 개에서 일곱 개 정도의 항목을 정해놓고, 각각 100점씩을 배정합니다. 예를 들어 '따뜻한 엄마 되기' 프로젝트라면, 명령 대신 부탁하기: 100점 만점, 20초 동안 꼭 안아주고 고맙다고 말하기: 100점 만점, 화가 나면 일단 그 자리를 피하고 정서 일기 쓰기: 100점 만점, 아이 정서의 그릇을 채우기 위한 30분 액티비티 하기: 100점 만점, 엄마가 실수하고 잘못한 것 용서를 구하기: 100점 만점. 이렇게 적어봅니다. 이 각 항목을 실천했으면 각각 100점을 줍니다. 제대로 못했어도 시도는 했으니 0점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평균 점수가 꽤 높게 나올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충분합니다. 이젠 내 기준으로 살아갈꺼니까요.
연기하세요. 진심이 담길 때까지.
연말이 되면 방송사에선 연기 대상이 열립니다. 연기를 제일 잘한 사람한테는 대상을 줍니다. 그렇지만 연기 신인들에게도 수상의 기회는 있습니다. 신인들 중에 가장 뛰어났던 연기자에겐 신인 연기상을 주니까요. 신인 연기자들의 연기는 너무 어색합니다. 그러나 연기자 스스로도 그 어색함을 견디고 꾸준히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 더 진정성이 담긴 연기를 할 수 있습니다. TV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 무엇인가 아직 많이 어색한 신인 연기자가 있을 겁니다. 그때마다 아직 연기 신인으로 애쓰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그 사람도 나도 열심히 노력하면 연기력도 늘어갈 거고, 어색함도 사라지고, 결국엔 진심이 담길 거예요. 얼마간의 시간 후엔 내게도 '애써주어서 고마워'라는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