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심어놓은 단어: 퍼즐 놀이
그저 바쁘게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코끝에 겨울의 찬 공기가 스칠 때 갑자기 가슴이 휑한 느낌이 듭니다. 계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마음이 공허합니다. 뒤섞여버린 자아의 퍼즐을 다시 맞출 시간입니다. 퍼즐 맞추기가 즐거운 건 완성된 작품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나'라는 개념의 퍼즐을 한번 맞추고 나면 공허함의 자리에 기대가 자리하게 됩니다. 다음 퍼즐을 맞출 생각에 살짝 설렐 수도 있습니다.
이유를 찾기 힘든 내려앉음
멀쩡히 잘 지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를 보셨을 겁니다. 왜 저런 결정을 했을까. 왜 저렇게 되었을까. 많은 질문이 떠오릅니다. 혹은 여러분 자신도 그런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괜찮게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날 마음이 훅 내려앉는 경험. 잘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방향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경험. 친구들과도 다 잘 지냈는데 어느 날 스스로 너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험. 물에 빠져서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안정감이 상실된 경험. 다른 사람들 사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부럽기도 하고 짜증도 나다가 우울해진 경험.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되면 이유를 찾게 됩니다. 내가 왜 이러지? 그런데 정작 어떤 이유를 딱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공허함의 이유
이런 경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공허함입니다. 공허함은 마음의 빈자리 때문에 느껴지는 헛헛한 감정을 말합니다. 뭔가 막막하고 답답하고 허무합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 감정은 여러 경우에 생길 수 있습니다.
내게 있었던 것이 사라진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되었을 때, 혹은 세상에서 떠나보내게 되었을 때입니다. 나를 채웠던 그 사람은 온기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습니다.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면 너무 미안해질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다 키워서 떠나보내면 소위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의미를 자녀에 두고 살았기에, 그 함께했던 시간이 한 번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기분입니다. 이제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참 막연합니다. 관계뿐만이 아니라 돈이나 권위 혹은 명예 등도 같은 원리입니다. 든든했던 것들을 다 잃어버린 순간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있어야 하는 것들이 내겐 없었다는 것을 느낀 경우.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등의 휴일에 TV에선 즐겁고 행복한 장면들이 방영됩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화가 납니다. 그리곤 우울해집니다. 넷플릭스를 보니 자녀를 버리고 떠났던 아빠가 수 십 년 만에 아파서 돌아와 자신에게 장기 기증을 요구하는 내용의 드라마가 나옵니다. 그 딸은 고민하다 그 아빠에게 장기를 나눠줍니다. 어느새 두 사람에게 다 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짜증이 나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너무 어둡습니다. 있어야 할 가족의 연결됨, 친밀함, 사랑, 용서가 나에겐 없다는 슬픔이 공허함을 줍니다. 게다가 남과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나에게 없는 것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는 학력, 직장, 자동차, 집 등의 소유들. 그리고 그것들이 나에게서 멀리 있다고 생각되면 더 큰 좌절과 공허를 느끼게 됩니다.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내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의심 혹은 배신이 일어난 경우.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어떤 신체 및 정신 질환을 겪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또 돈이나 학력을 기대거나 자랑하다가 그것들이 통하지 않는 일을 경험하면 공허함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경우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일입니다. 내 편인 줄 알았던 내 남편이 '우리 집'이라고 말하며 본인의 이전 가족을 말할 때. 내 편인 줄 알았던 아내가 나를 외딴섬으로 밀어낼 때. 뼈가 삭도록 키웠던 아이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소리칠 때. 내 친구가 나만 빼놓고 전에 같이 욕하던 아이와 여행을 갔을 때. 아이가 일 년이 넘도록 나를 속여왔던 것을 뒤늦게 발견할 때.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는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아픈 이유는 그 배신감을 느낀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쳇바퀴
공허함은 참 무섭습니다. 오랜 기간 노출되면 우리를 정서적으로 완전히 무뎌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곤 절망에 빠뜨립니다. 절망은 포기를 부릅니다. 재정 활동에 대한 포기. 일상에 대한 포기. 잡고 있던 관계에 대한 포기. 돌보던 사람에 대한 포기.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포기입니다. 이 포기는 삶의 호흡에 대한 내려놓음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살입니다. 포기와는 다르게 그 빈자리를 덜 건강한 것들로 채우려고 하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알코올 중독, 성 중독, 도박 중독, 관계 중독 등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것으로 채우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포기하려는 시도도, 채우려는 시도도 다 소용이 없음을 곧 깨닫게 됩니다. 다시 또 절망과 공허로 돌아갑니다. 이 쳇바퀴 속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퍼즐 맞추기
그러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실 것입니다. 그땐, 직소 퍼즐 놀이를 한번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복잡하게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것은 재밌습니다. 그렇지만 개수가 많거나 복잡한 퍼즐은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을 만큼 쉽지 않습니다. 조각을 찾아서 여기저기에 대보고 맞을 때까지 찾아야 하니까요. 그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자신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파편화되어 흩어진 자아입니다. 그렇게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는 상태이기에 안정감 있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매일 삶이 흔들 다리 위를 걷는 듯 불안합니다. 그리고 삶의 전반에 걸쳐 좀 근원적인 모호함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존재론적인 공허'라고 부릅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살고 있는지 등의 질문에 답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지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알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가 참 많습니다. 요즘엔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보는 노래도 유행입니다. 그러나 노래를 부른다고 무엇이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자신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몇 주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아래의 단계를 밟아보시기 바랍니다.
첫 단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 아래의 질문들을 천천히 읽어보며 대답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곤, '네'라고 대답한 질문들에, '내가 왜 그렇게 되었지?'라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통해서 현재 내가 서있는 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마트폰 메모장이나 컴퓨터에 쓰면서 하길 추천합니다. 나중에 수정하고 싶을 때 편하게 할 수 있으니 유익합니다. 시간 순서나 사실 관계가 잘못된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다 쓰고 나선 그 내용을 가까운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나눠봐도 좋습니다. 주의할 점은 절대로 나를 힘들게 했던 대상과는 나누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이유는 용서를 다룰 때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질문]
내 주관 없이 남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 기분이 드나요?
지금의 내 삶보다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훨씬 좋고 행복했다는 생각이 드나요?
미래를 생각할 때 성장하거나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지나요?
꿈꿔왔던 내 모습이 이젠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나요?
어린 시절이 다 잊고 싶을 만큼 불편하고 고통스러운가요?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 이렇게 살면 되는지 혼란스러운가요?
둘째 단계, 자기 프로파일 만들기. 자기 관념 즉 자신에 대한 지식 및 인식의 양을 늘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사물에 비유한다면 무엇이 될까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적어보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을 '피에로'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쉼 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이면에 있는 자신만의 고독과 슬픔을 말할 수도 있겠죠. 어떤 사람은 자신을 '고슴도치'에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만지면 따가운 자신의 지나친 예민함과 방어 행동들이 이유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떤 사물로 표현되는지 들어보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됩니다. 이런 활동에 더해서 자신의 신체 특성, 성격 특성, 맡고 있는 역할과 그 역할에서 잘하는 것과 발전이 필요한 것 등을 적어보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늘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단계, 자기 퍼즐 맞추기. 자기 불일치 이론_self-discrepancy theory (Higgins, 1987)에서 말하듯 인간에겐 누구나 분리된 자기 개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실적 자기_actual self, 의무적 자기_ought to self, 그리고 이상적 자기_ideal self입니다. 이 세 자아의 괴리를 줄이면 슬픔과 불만족, 낙심, 불안, 공포, 죄책감, 공허함 등에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각각의 나를 놓고 묘사하는 형용사 5개씩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되어야만 하는(강요받은) 나, 되고 싶은 나의 네 가지 영역입니다. 그리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현재의 나'와 '되고 싶은 나'를 비교하며 그 괴리를 살펴봅니다. 그 후에 '강요받은 나'가 현재의 나에 주는 영향을 살펴보며, 그것이 혹시 내가 '되고 싶은 나'로 나아가는 것에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지 살펴봅니다. 이것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의 개념을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살펴보게 됩니다. 이 과정을 꼼꼼하게 다뤄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탐험에서 지도를 얹게 된 것처럼 안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곤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듯이 '되고 싶은 나'로 걸어갈 작은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내내 자리 잡았던 어두운 공허함에 바늘구멍에서 비취듯 작은 빛이 들게 됩니다.
자기 인식의 즐거움
빈 그릇을 채우려고 쏟아 넣었던 좋지 않은 것들에 너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뭔가를 채우려고 몸부림치던 몸짓도, 자신과 타인을 향한 원망도 잠깐 멈출 수 있을지 부탁을 드려봅니다. 그리고 늘 숙제 같고 일 같은 삶에 놀이라는 단어를 붙여봅시다. 퍼즐 놀이입니다. 나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찾아가는 자기 인식의 퍼즐 맞추기는 처음은 더딜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00 피스 퍼즐이 완성되면, 500 피스, 1000 피스 퍼즐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 나의 한 부분을 알아가고 나면, 그다음 부분을 알아가는 것은 즐거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퍼즐 완성에 도움이 될 책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혼자 하기 어려우면 주변의 도움을 구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퍼즐 조각을 흩뜨려 놓은 채 방치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혼란과 모호함이 만들어내는 존재론적 공허함을 생각하면 이제 움직이실 때입니다. 이런 글로라도 공허함에 긴 시간 힘들어하신 분들의 낙심한 마음 한 끝에 작은 빛을 비추고 싶습니다. 작은 성취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