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클라이밍

떨어져도 다시 완등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by 연노랑

취미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햇수로 어언 3년이 되었다. 공부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뭐든 입문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두각을 보이는 나에게 (중급 이상이 되면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유일하게 처음부터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운동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이 모두 좋아하는 체육 시간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그럼에도 승부욕과 자존심은 적지 않아서 그 괴리가 힘들었다. 악착같이 노력해 만점을 받아내던 수행평가도, 갈수록 노력으로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피겨스케이트부터 검도와 유도, 러닝, 필라테스까지 여러 운동에 도전해보기도 했지만,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실력에 도달하지 못하는 날들이 길어지자, 그나마 남아있던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마저 옅어지곤 했다.


아무튼 운동과 아예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보니, 운동을 오래 쉬다보면 몸을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온다. 대학생인 내가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질리지 않고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클라이밍을 접하게 된다.


내가 하는 클라이밍은 볼더링이라는 종목으로, 같은 색깔의 홀드만을 잡고 올라가며 완등 홀드를 잡고 버티는 종류의 클라이밍이다. 하나의 문제를 풀어내는 시간이 비교적 짧고, 체육관에 가면 난이도에 따른 문제가 다양하게 있어 입문자도 재미를 느끼며 등반을 할 수 있다. 처음 친구들과 클라이밍에 입문한 날, 팔다리가 길다는 체형의 장점 하나만으로 초심자 레벨의 문제를 대부분 풀어냈고, 나의 성장과 성취를 이토록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클라이밍이라는 스포츠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몇 차례 더 친구들을 따라 클라이밍장을 방문한 뒤, 회원권을 끊고 암벽화를 구입하며 본격적인 클라이머가 될 준비를 마쳤다.


처음 세 달 간은 정말 즐겁게 운동을 다녔다. 갈 때마다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났고, 긴 팔다리와 좋은 균형 감각이라는 장점을 살려 차근차근 레벨을 높여갔다. 전완근이 단단해지고 이두가 생기는 것이, 한평생 근육이라곤 없던 내게도 드디어 근육이 생기는 증거 같아서 매일이 뿌듯했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동작 하나하나 되짚으며 풀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여전히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중 하나이다. 드디어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다는 행복감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태기 (클라이밍 권태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근육이 없고 잘 붙지 않는 체질이다 보니, 함께 클라이밍을 시작한 친구들보다 성장 속도가 더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운동을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나름의 호승심은 있어서인지,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다가도 괜히 풀이 죽었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쁨보다 나의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한동안 암장에 가는 것이 재미가 없어 두세달씩 운동을 쉰 적도 많다. 운동이 스트레스였던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좋아하는 운동이었는데, 이것마저 온전히 즐길 수 없다는게 왠지 억울하고 분했다. 어떻게 운동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건지, 빠르게 성장하는 이들이 부러워서 눈물이 막 났다.


그렇게 두달씩 운동을 쉬다보면, 이상하게 다시는 거들떠 보기도 싫었던 운동임에도 갑자기 자신감이 생긴다. 오랜만에 가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리고 다 떠나서 다시 벽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는데, 내가 주로 했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취미 생활인데 뭐하러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운동을 하냐, 재능이 있었으면 운동 선수가 되었겠지, 나는 파랑만 풀어도 재미있으니까 가서 파랑 많이 풀면 되지 등등.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즐길 생각만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이다. 나의 자존심은 결국 운동을 못하는 나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걸 깨닫자, 그럼에도 노력하는 나를 조금은 보듬어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도 모종의 사유로 한동안 운동을 쉬었다. 그러다가도 좋아하는 운동인데 즐길 수 없다는게 갑자기 너무 억울해지면, 짐을 챙겨 암장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남들의 성장을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근지구력의 성장을 칭찬하거나, 평소보다 못하는 날에는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렇다는 합리화를 하며 건강한 정신으로 운동을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클라이밍은 정말 다치기 쉬운 운동이라, 조금이라도 힘이 없으면 완등을 코앞에 두고도 내려오는 안전제일의 마음가짐도 늘 잊지 않는다. 운동이 너무 어렵던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최애 운동, 그것이 소중한 만큼 다치지 않고 오래도록 이 건강한 마음을 지속하며 운동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