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 사전의 '쓰다'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쓰게 될 것』에서는 각 단어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자신만의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작가님 역시 책의 초판본에 '최진영 사전'을 만들어 첨부하였는데, 그 중 '쓰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글자로 표현하다. 짐작과는 다른 것이 나타난다.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 정기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며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스스로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나는 쓰기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나은 사전에 정의된 '쓰다'는 무엇일지, 이 글을 쓰며 알아보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의외로 작가의 꿈을 꾸는 아이였습니다. 소설가가 되어 쓰고 싶은 이야기 소재를 메모해두고, 친구들과 돌아가며 소설을 연재하는 놀이를 했습니다. 교내 대회에서는 글쓰기로 상을 받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감도 있었구요. 이런 제가 쓰기를 두려워하게 된 것은 생각이 자라고, 제 생각들이 평가받는 시절이 온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 생각이 볼품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에게 실망하게 될까 두려워 내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쓰기를 피했습니다. 스스로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실력도 한 몫 했을거예요. 그 시절 저는 일기를 썼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메모장에 두서없는 글쓰기로 오늘 있었던 일들과 이로 인한 감정들을 버리듯이 써내려갔고, 이를 혼자 들춰보며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수많은 감정들에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 때는 혼자 메모장에 모든 걸 써내려가곤 한답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읽는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편지였습니다. 연애를 하며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말만 골라담은 글을 주고 싶었어요. 방법을 몰랐지만 마음은 확실하니, 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하고 담백한 글이라서 좋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풀 벗겨진 순간이었어요. 그 따뜻함과 용기를 업고 조금씩 글을 써보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말은 사람을 바꾸기도 해요.
최근에는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주로 한국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과 산문을 주로 읽습니다. 책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들이 많습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 보편적인 감정을 그토록 특별하게 풀어내는 것에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많아요.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도, 문장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순간을 만끽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글도 누군가한테 위로가 되고, 누군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좋아하는 책의 서평을 남기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감상이 아직 따끈따끈할 때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면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게 쓴 글을 혼자서 수십번을 읽곤 합니다. 쓰는 행위가 삶의 즐거움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은의 쓰는 행위들을 돌이켜보며 정의한 나은 사전의 '쓰다'는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글자로 붙잡아두다.' 인 것 같아요. 삶의 모토 중 하나인데, 치기 어린 생각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철없던 생각들이 우스울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치열했던 생각의 결과물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드니까요. 치기 어린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어린 시절의 생각들, 좋은 추억과 기억들, 이 순간의 내 감정, 무엇 하나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 없어요. 미래의 나를 만드는 현재의 모든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기록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나에게 쓰기란 기억을 만드는 행위. 잘하고 싶은 것. 나를 찾는 과정.
이런 저의 쓰기 여정에 함께해주실 모든 분들께, 반가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꾸준히 쓰며 발전하는, 어제보다 나은 '나은'이 되는, 공대생의 나아가는 글쓰기 여정. 잘 부탁드립니다.